2011년 5월 23일 월요일

천익창이 본 이왕직 아악부 마지막 악기장 강상기 전, 후 한국의 악기장

천익창이 본 이왕직 아악부 마지막 악기장 강상기 전, 후 한국의 악기장



지난번에 발표한 "천익창의 일제시대 가야금 이야기" 발표에 이어 일제시대 전(조선시대), 후 한국의 국악기가 어떻게 변화되고 누구에 의해 만들어 지고 있는지 소유자, 악기장을 중심으로 살펴 보기로 한다.





탁영금(濯纓琴, 조선 성종 21년 1490) 탁영 김일손(濯纓 金馹孫 1464~1498)의 거문고, 보물 제957호 앞면





탁영금(濯纓琴, 조선 성종 21년 1490) 탁영 김일손(濯纓 金馹孫 1464~1498)의 거문고, 보물 제957호 뒤면





옥동 이서의 거문고(1662~1723)





출처가 분명한 거문고 오른쪽부터 강포 류홍원(영조 2년 1726), 병와 이형상(1653~1733), 석탄 이신의(조선 광해군 10년 1618), 고산 윤선도(조선)





석천 전일상(石泉 田日祥 1700~1753)의 가야금 풍류그림(석천 한류도 조선 영조 24년, 1748년)





흥선대원군 이하응(興宣大院君 李昰應 1829~1898)풍류방 가야금




이미 이전이야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일제시대 궁중의 악사들(이왕직 아악부)은 이전 시기에 비해 그 숫자가 현격히 줄어 들었으며 악사가 줄어 들었다는 것은 새롭게 악기가 제작될 필요성이 현격히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그 시기에 탄생한 기방가야금(산조가야금)에서 보여지는것 처럼 민족 의식을 갖고 있는 악기 제작자나 연주자라면 자부심이나 긍지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일예로 일제시기 제작된 산조가야금이나 이왕직아악부 악기들에는 이전에 흔하게 볼수 있는 제작자나 연주자의 낙관을 확인 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제작자의 낙관을 볼 수 없는 것이 라든가 이시기 마지막 이왕직아악부 마지막 악기장 이었던 강상기의 제자가 없이 맥이 끊어졌든 사실이 악기나 음악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지 않았음을 반증 한다





이전시기 흔히 볼 수 있는 낙관을 확인할 수 없는 이왕직아악부 가야금





이전시기 흔히 볼 수 있는 낙관을 확인 할 수 없는 이왕직 아악부 거문고





천익창 소장, 풍류가야금, 일본도, 일제시대(1910~1945) 산조 가야금, 일제후기 절금(折琴)





천익창 소장, 일제시대(1910~1945) 산조 가야금, 일제후기 절금(折琴)



천익창의 일제시대 가야금이야기 관련자료 바로보기:

http://blog.naver.com/hyc53/50097539880




이왕직 아악부(李王職雅樂部) 마지막 악기장(樂器匠) 강상기(康相騎) 1966년 사망 후 공용전속악기장의 맥은 끊어졌으나 악기 제작기능을 가진 제작자 들은 김광주, 김붕기, 김현칠, 김종영, 최태진, 김희곤, 염남기, 양춘엽, 박종태, 이영수, 정수웅, 박균석, 지방에 설재수, 원국진 ....등 이 있었으며 이시기 서양문화가 물밀듯 들어온 시기라 국악계에도 변화의 시도가 있었는데 그 예로 이 시기 제작된 변형국악기를 통하여 그 시대의 일면을 볼 수 있을 듯하다




1967년경 제작된 변형국악기들




기타의 울림통을 모방한 변형 국악기 가야금(위 악기는 국립국악원에서 개량국악기로 전시된 일도 있음)





서양 현악기의 공명홈을 모방한 변형 국악기 거문고(위 악기는 국립국악원에서 개량국악기로 전시된 일도 있음)





상판에 여러 개의 공명홈을 만든 변형국악기 아쟁(위 악기는 국립국악원에서 개량국악기로 전시된 일도 있음)





나발모양의 공명홈을 만든 변형국악기 해금(위 악기는 국립국악원에서 개량국악기로 전시된 일도 있음)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와 같은 악기들은 2011년 현재 사용되지 않고 있는 악기들이며, 특징이라면 악기에서 보듯 서양악기에 모방형태를 띠고 민족 악기로서 자부심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후 1970년대 초 부터 문화재관리국은 위에 지적된 사람중 몇사람을 선정하여 무형문화재 악기 기능보유자로 지정하였다.


이중 김광주는 1971년 국가지정 제 42호 악기장 기능 보유자가 되었고. 이영수는 1991년 중요무형문화재 42호 악기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984년 4월 김광주가 사망후 그의 제자중 고흥곤이 1997년 스승의 뒤를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42호 악기기능보유자 지정되었다



김광주(金廣胄,1906~1985, 부친 김명칠:金明七)가 1961년 전주에서 상경한 후 1971년 무형문화재 42호 악기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필자(천익창)가 1973년 종암동거주 시절 종암극장, 종암 파출소 근처 주택가에서 가야금을 위주로 소규모 악기를 제작했으며 70년대 후반에는 창신동 바위 절벽아래에서 악기를 제작하였다,






1970년대 후반 김광주의 제자중 최세춘, 고흥곤, 최태귀 등과 함께 가야금을 제작하든 절벽아래





창신동 바위 절벽아래 가야금을 제작하기 위해 오동나무를 건조하는 모습




이시기 필자(천익창)는 김광주선생께 산조 가야금 보다 조금 작은 가야금을 주문하였으며 그 악기를 새롭게 개조(개량)하여 사용하였다. 김광주선생 제작의 가야금의 특징이라면 가야금 뒤판의 결(무늬)을 살린 화려함이 특징이었다.





필자(천익창) 소장의 김광주선생 제작의 가야금의 특징이라면 가야금 뒤판의 결(무늬)을 살려 화려함이 특징이었다.





김광주가 사망(1984년 4월) 하기 전 창신동 절벽아래 악기제작소, 2011년 현재 김광주의 제자중 최세춘에 의해 운영






최세춘 가야금의 특징 스승 김광주처럼 악기 뒤판에 무늬를 살린 것이 특징





김광주 제자중 최세춘(1947~ ) 이춘희(1955~ ) 부부 악기제작





김광주 제자중 고흥곤(1951~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42호 악기기능보유자 지정, 가야금 화려한 금박 무늬가 특징





김광주 제자중 최태귀 화려한 자개장식이 특징






김붕기 김광주, 제작기술을 이어받은 이영수(1926~ )1954년 김붕기 악기제작사사 1991년 중요무형문화재 42호 악기기능보유자 지정, 제자에는 이동원, 양해철, 조정삼, 박성기, 김두향 등등이 있다





국악기 제작소가 대부분 그렇듯이 의도적으로 찾지 않고 우연히 볼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조정삼대표 성음 국악사, 창덕궁앞 골목에 위치해 찾아가지 않는다면 쉽게 볼 수 없는 위치에 있음



백옥기 김광주 김붕기에게 가야금 제작 기술을 전수받은 조정삼(1940~ )은 2011현재 양평거주 하며 1970년대 전주에서 상경 그동안 여러 제자를 두었는데 전주에 고수환 최동식, 광주에 이준수(광일 국악기, 김광주 전수), 서울에 조대석, 김두향, 조경석(수원) 조범석(세종국악기대표 숙부) 조문석(청주) 충북 영동에 조준석(전북남원출신 조정삼의 조카, 1977년 12월 조대석 국악기 제작 입문 )등이 있다.





조정삼의 제자(처남), 42년째 가야금 제작에 몰두한 김두향(1956~ )



2011년 현재 한국의 악기장의 흐름


김명칠에 이어진 김광주(전라남도 보성:寶城 생, 주로 전주에서 활동, 1961년 상경, 1984년 4월 사망)의 제자들 최태진(崔泰珍, 최태순, 1941~ ), 최태일, 이춘봉, 김복곤, 최세춘. 고흥곤(高興坤)· 최태귀 등등...


김붕기(김학기)에 이어진 이영수 제자들

이동원, 양해철, 조정삼, 박성기, 김두향 등등...



백옥기 김광주 김붕기에 이어진 조정삼 제자들

전주에 고수환 최동식, 광주에 이준수(광일 국악기, 김광주 전수), 서울에 조대석, 김두향, 조경석(수원) 조범석(세종국악기대표 숙부) 조문석(청주) 충북 영동에 조준석(전북남원출신 조정삼의 조카, 1977년 12월 조대석 국악기 제작 입문 )등등...



일제시대 이왕직아악부 마지막 악기장 이었던 강상기의 맥은 끊어 졌으나 전주에는 김명칠이 있었고 정읍에는 김붕기(김학기)가 있었다.


광복후 김명칠의 기법은 그의 아들 김광주에 이어졌고, 1961년 서울로 옮겨 여러 제자를 가르치며, 71년 국가지정 제 42호 악기장 기능 보유자로 활동하다 1984년 4월 타계했다.


이영수는 정읍 김붕기의 기능을 받아 전북문화재로 지정되었으나 김광주의 기능도 전수받았고, 2011년 현재 악기 공방과 거주지는 한남동에 있다




* 악기 제작자들은 한사람의 스승 밑에 꾸준히 기능을 전수받아 활동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기저기 몇 사람의 스승 밑에 전수를 받은 전수자들도 있어 편의상 일일이 스승을 열거하지 못하였으며. 현재 위에 소개된 많은 국악기(현악기 중심) 제작자들을 스승으로 두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많은 제자들이 있으며, 거론된 숫자 이상으로 많은 인원이 악기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 천익창 경력및 활동

http://iboard2.superboard.com/board.cgi?db=28_dwhyc53noti251&idx=8&page=8




유튜브에 개설된 천익창의 동영상 사이트

http://www.youtube.com/hyc53#p/u

http://www.youtube.com/hyc53?gl=KR&hl=ko#g/u



천익창( Ikchang Cheon) 010-8790-7776,
E-mail: hyc53@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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