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21일 토요일

일제시대 탄생한 산조 가야금 산조음악과 한국의 악기장

일제시대 탄생한 산조 가야금 산조음악과 한국의 악기장


일제시대 일제는 우리전통문화 말살정책을 펴왔으나 그들이 고안하고 보급한 기방문화의 상징 산조가야금과 가야금 산조 음악은 확실하게 뿌리내려 현재 한국전통문화의 대표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

일제시대 일제는 조선악기를 만들면 사상법으로 몰아 자유로운 악기 제작 활동을 탄압 방해 하였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산조 가야금 산조 음악은 일제시기 기방문화로 정점에 달하였으며 2012년 현재까지도 여러지역에서 일제시기 제작된 산조가야금이 발견되며, 그 시기에 생겨난 여러 연주자들에 의해 그 맥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기득권 주류문화로 튼튼히 전승되고 있다.



일제시대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산조가야금과 2012년 현재까지도 사용되고있는 산조가야금


지난 1979.12. 8 일자 경향신문 "대를 잇는다, 보람에 사는 외길인생, 악기장 김광주옹~전수자 최세춘씨"에 따르면 한국최초의 악기장으로 중요무형문화재 42호로 인정(1971)받게 된 김광주 악기장의 악기를 처음 접하며 악기장으로 탄생되는 과정을 알수 있는 의미있는 기사가 있어 이 기회에 소개 하기로 한다.


(경향신문 1979.12. 8일자 " 대를 잇는다, 보람에 사는 외길인생(48) 악기장 김광주옹~전수자 최세춘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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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가 고향인 김옹은 27살이 될때까지 장가도 못가고 목공일로 생계를 잇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자전거를 타고 심부름을 가다가 웬 노인이 문을 열어놓고 거문고를 타고 있는 것을 보고는 돌부처 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참 소리가 듣기 좋더군, 물론 그때는 그 악기가 거문고인지 몰랐지, 도대체 처음 보는 것이 었으니까"

그일이 인연이 되어 낮에는 목공일을 하고 밤이면 그 노인을 찾아가 처음에는 탄주법을 배웠으나 곧 직업의식이 발동 않을수 없었다.

"만들어 보고 싶다"고 김옹이 그할아버지에게 간청했으나 자신도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니 안될것이라고 잘라 말했지만 김옹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거문고를 놓고 오동나무를 잘라다가 목공일하던 솜씨로 나무를 주무르기 1달만에 대강 흉내는 냈으나 소리가 제대로 날리 없었다. 그러기를 1년여, 나무와의 씨름에서 김옹은 드디어 승리할수 있었다. 고운 소리를 내는 거문고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깐이었어 일본형사가 조선 악기를 만든다고 사상범으로 몰아세우더구먼 할수없이 눈을 피해 방공호로 숨어들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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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79.12. 8일자 " 대를 잇는다, 보람에 사는 외길인생(48) 악기장 김광주옹~전수자 최세춘씨" 중에서)


김광주(1906~1984. 4)가 한국최초의 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받게 된 것은 1971년 그가 악기를 처음 알고 제작한 1933년 일제시대 후반기 그의 나이 27세때의 일이며 김광주 나이 39세때인1945년에 해방 되었고 악기 제작한지 38년 만에 중요무형문화재 42호 악기장이 되었다.

1984년 4월 김광주가 사망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 전통 국악기중 현악기들이 많은수 만들어 지고 있으며 중요무형문화재가 된 사람을 포함해 전국에 걸처 많은수 악기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김광주의 제자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악기 제작자들이 산조가야금을 역사가 깊은 우리의 전통악기로 알고 있는 것은 일제의 암흑기를 거치면서 예상치 않든 혼란스런 해방을 맞이하는 사이 대부분 생계가 다급한 백성들은 전통이 무엇인지 관심을 두지 않든시기에 마지막 이왕직아악부 몇남지 않은 예인들에 의해 새로운 조직이 형성 되어 그들에 의해 비판없이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발발시기 일본 천황을 찬양하며, 조선의 젊은 청년들을 전쟁터로 몰아넣은 황화만년지곡을 만들고 발표한 친일 인사인 김기수를 비롯 이왕직아악부 마지막 악사들에 의해 국립국악원이 생기고 국악사 양성소(현 국립국악고등학교)가 생겨나니 이전에 기방의 예인들 또한 그들과 합류하여 한국의 전통 주류문화로 발판을 다지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였을 것이다.




일장기를 걸고 일본천황을 찬양하는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의 김기수작곡의 황화만년지곡(皇化萬年之曲)연주(1940. 11. 9 부민관, 일본기원 2600년을 기념하는 봉축연)


이제 세월이 흘러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생겨난 문화를 일제문화니 한국의 전통이니 따지냐고 할수도 있겠으나 모르고 추종하는 것과 알고 행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라 진솔하게 지적하는 것이다.

필자는 필자의 주장이 잘몰라서, 잘못된 주장이길 바라며,

악기 제작자나 가야금 산조 전수자들 누구든 국악계 종사자들의 또 다른 이견(異見)이 있길 기대하며, 산조가야금, 산조음악이 필자의 주장보다 더 훨씬 오래된 한반도 전통문화라는 사실을 증거를 제시해 밝혀주길 바란다.

또한 지금껏 그래왔고 지금처럼 산조가야금 산조음악이 마치 오래된 전통인양 막연한 심증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억지 학문으로 지속되지 않길 바란다.



친일매국노 주요인물 109명 매국행적과 약력 중 음악부분 김기수

*김기수(金琪洙·光山哲三, 국악 작곡)-1940년 11월 9일 일본기원 2600년을 기념하는 봉축연회에서 이왕직 아악부가 연주한 '황화만년지곡' 작곡. 이 곡은 이능화의 1939년 한문시에 곡을 붙여 일본기원 2600년 기념 공모 당선작, 국내 최초로 오선보로 작곡된 국악 창작.


일제시대 일제문화의 상징 산조가야금 관련자료 바로보기;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탄생한 산조 가야금 산조음악 감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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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일제문화의 상징 산조가야금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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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조선인 탄압의 현장과 일제문화의 상징 산조가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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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조가야금, 천익창의 일제시기 가야금(문화)이야기 -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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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김창조 풍류가야금(정악, 법금)과 신라시대 신라금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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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익창이 본 이왕직 아악부 마지막 악기장 강상기 전, 후 한국의 악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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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8일 일요일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탄생한 산조 가야금 산조음악 감상법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탄생한 산조 가야금 산조음악 감상법(이해하기)

필자는 가야금 산조 음악을 이해 하는데 많은 부담을 느끼는 젊은이 들과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좀더 가까이 이해 될수 있는, 이해에 도움이 될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사실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글을 쓴다.

가야금산조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선 음악뿐만 아니라 산조가야금과 가야금 산조 탄생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음악을 이해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미 이전에 발표한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산조 가야금 탄생은 일제시대 일본인에 의해 서대문 형무소에서 제소자들에 의해 강제로 제작되어 기생들에게 공급된 것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그시기 전국에 산재한 일본인이 관할 통제하는 전국의 형무소에 지배계급의 일본인이 있었고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기방이 있었다, 또한 기방에는 그들이 제공한 기방문화의 필수품인 산조가야금 또한 있었다.




일제강점기 전국 형무소 배치도(1936)

일제강점기 세계정복에 혈안이된 일본인들은 저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독립을 부르짖는 조선인을 살육과 탄압으로 일관 하였으며 그들이 남긴 흔적들은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 보존, 복원중에 있으며, 탄압의 흔적은 전 국토에서 행하여 졌다.

그중 일부 복원된 고문을 위한 고문 기구들은 정신을 혼미하게 하고 사지를 얼어 붙게 한다.


취조때 사용된 여러종류의 고문기구


한사람이 겨우 누울수 있는 정도의 똥통이 있는 독방과 4면에 쇠꼬챙이가 박힌 4각 박스 고문기구



벽관 고문

옴짝달싹할 수도 없이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하여 앉을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고통을 주엇던 고문도구 벽에 서 있는 관이라 하여 '벽관'이라 이름 붙여졌다.


지하독방

취조 후 옥사로 이동하기 전 감금했던 곳, 곳곳에서 들려오는 고통의 비명소리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고문의 공포로 휩싸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하독방에서도 독립운동가는 만세소리를 멈추지 않았고, 독립의 다짐을 되새겼다(서대문 형무소역사관)




민족의 빛 독립운동가 육성증언


...(여자들은)자궁에다 막대를 넣고 휘젓고..... 남자들은 성기에다 심을 박고 불지르는 거.... ...차라리 죽는 게 나았어 죽여 달라고 아우성을 치지 죽는게 낫거든 아픈것 보다 죽는 게 나아... (애국지사 이병희 증언중)


일제시대 서대문 형무소 독립운동가의 물고문


일제시대 서대문 형무소 독립운동을 한 여성들의 주리틀기 고문


사형장 담벼락과 바깥쪽 통곡의 미루나무 이 미루나무는 1923년 사형장 건립당시 식재되었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애국지사들이 마지막으로 이 나무를 붙잡고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원통함을 눈물로 토해내며 통곡했다고 하여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이름 지어졌다.



한편, 사형장 안쪽에 같은 시기 식재된 미루나무가 있으나, 너무나 억울한 한이 많이 서려 잘 자라지 못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서대문형무소역사관)


사형장과 담벼락 안쪽의 미루나무



고문에 의한 고통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저항없이 목숨을 버렸든 독립운동가들 일제시대 서대문 형무소 사형장과 모퉁이에 서 있는 작은 미루나무 너무나 억울한 한이 많이 서려 잘 자라지 못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서대문 형무소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의 참혹한 고문의 현장이 있었으며 피비린네 나는 고문과 고통의 비명소리가 있었고, 억울한 죽음이 있었다.


이시기(일제강점기) 피해자의 고통은 말로 다 할수 없지만 가해자인 일본인들 또한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이다.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면 그들은 그 스트레스를 무엇으로 풀었겠는가,


일제강점기 지배계층의 일본인 남성들은 무엇으로 스트레스를 해소 하였는가?

위에서 보는바와 같이 조선반도를 점령하고 세계정복을 꿈꾸는 일본인들의 야망은 많은 희생을 필요로하고 그들 스스로도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그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를 무었으로 해소 하였는가,


모든 자연계, 동물의 세계에도 마찬가지 이지만 정복에 따른 수컷들의 일차적 보상은 섹스에 있다.


그들은 섹스로 많은 스트레스를 해소 하였다


일예로 전쟁터에 끌려다니며 희생당한 위안부들이 있으며 지배계층을 상대로한 기생들이 이었고 그 중심에 그들이 고안하고 제공한 기방문화의 대표 산조가야금이 있었다.



조선반도를 강점한 일제시대 일본인들에 의해 고안되어 기생들에게 보급된 산조 가야금을 연주하는 기생


일제시대 기생들은 조선인으로 격은 비애는 남달랐을 것이며, 한편 부를 축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였다,


축척된 자금은 후일 자신들의 명예회복에 일조를 하며, 무형문화재도 되고, 국공립교육기관 설립에 일조를 하기도 한다.



일제시대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산조가야금 변화 과정


좌로부터, 첫번째 일제시대 초기제작된 산조가야금, 두번째 문제점이 개선되어 제작된 산조가야금, 세번째 일제시대 후기에 절단된 절금


좌로 네번째, 우측 첫번째 2011년 현재 가장 많이 보급된 일반적인 형태의 산조가야금, 일제의 흔적이 대부분 제거 되었으나 기본적인 형태는 변함이 없으며, 제작자에 따라 여러가지 문양의 도안을 사용하며, 소뼈, 자개, 금, 옥, 칠보등으로 장식을 하기도 한다.


이 시기 민간에서 가혹 일제의 산조가야금을 모방한 가야금이 나오기도 하였는데 특징이라면 세련됨이 부족 하였고, 일제를 상징하는 문양이나 나전칠기 자개장식의 화려함이 부족 하였으며, 부들 메듭 공(孔)이 24공(孔)이 아닌 이전 현악기 제작모양과 같은 12공(孔)을 사용하는 특징을 가지며, 기생들에게 인기를 얻지 못하고 주류악기에 밀리어 지속적 발전을 하지 못하였다.

일제시대 제작된 산조 가야금은 경성(서울)뿐만 아니라 그들이 설치한 전국형무소에 파견된 일본인 중심의 기방에 산조가야금이 있을수 있기때문에 아직도 파손되어 사라지지 않았다면 발견될수 있는가능성이 있으며 필자가 확인한 광주, 대전, 춘천에서 촬영한 산조가야금을 공개 한다



춘천지역에서 발견된 산조 가야금


대전지역에서 발견된 산조 가야금



광주지역에서 발견된 산조 가야금

일제강점기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드라도 희희낙낙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극소수 친일 매국 권력자나 부호가 아니라며, 기방에 출입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대다수 일본 남성과 친일 매국 권력자들이 기방에서 그들은 무엇을 하였겠는가, 고상하게 한복 차려입고 가야금 산조연주를 30~60분동안 연주하는 것을 집중하여 감상 하였겠는가?


손톱 밑에 쇠꼬챙이를 찔러놓고 들어야 하는 비명소리, 사타구니에 지렛대를 끼워 넣고 주리를 틀며 들어야 하는 비명소리, 죽기가 억울해서 미루나무를 잡고 통곡을 하는 조선인들을 상대하는 조선반도에 주둔하는 일본 남성들의 일상 이였다면 그 스트레스는 아마도 정신병을 갖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이들이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 했는지 짐작이 어렵지 않다.


하루 종일 지옥같은 비명소리에서 벗어나 조선의 여인을 품에 끌어안고 조선의 여인이 들려주는 가야금 소리라면 그 소리가 생수같은 깊은 산속 천연약수 같은 소리가 아니였겠는가


그들이 느낀 쾌락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오죽하면 줄줄이 복상사(腹上死)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가,


일제시대 복상사(腹上死)관련기사 바로보기: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1953#


이글의 제목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글은 가야금산조 이해 하는 법(감상법)이다,


과거로 돌아가 똑같은 환경을 재현하여 당시의 일본인이 되어 가야금 산조를 듣는 다면 생수같은 깊은 산속 천연약수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나,


그것을 재현 하기란 불가능 한 것이라 비명 소리라도 듣고 가야금 산조를 감상 한다면 조금 이나마 이해 하기가 쉽지 않을까 한다.


TV 드라마 혹은 영화나 음악중 죽을 듯한 비명 소리를 10분 이상 들을수 있다면 듣고 난후 가야금 산조 음악을 듣기를 추천한다.


천상의 소리, 생수 같은 깊은 산속 천연약수 같은 소리를 느낄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화 예술을 이해 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경우 시대적 배경을 이해 함으로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어 산조가야금과 가야금산조 음악의 탄생배경을 살펴 보았다.


일제시대 일제문화의 상징 산조가야금 관련자료 바로보기;

일제시대 일제문화의 상징 산조가야금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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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조선인 탄압의 현장과 일제문화의 상징 산조가야금 http://blog.paran.com/hyc53/46215537


산조가야금, 천익창의 일제시기 가야금(문화)이야기 -연화- http://blog.daum.net/hyc53/14032019


한반도 현악기 역사 시대별자료 바로보기

조선시대 김창조 풍류가야금(정악, 법금)과 신라시대 신라금 바로보기; http://blog.daum.net/hyc53/14032020


한반도 철기시대 현악기 바로보기;
http://cafe.naver.com/hyc53/50

한반도 신석기 시대 현악기 바로보기;
http://cafe.naver.com/hyc53/43

한반도 신석기 시대 비봉리 현악기 바로보기;
http://kr.blog.yahoo.com/ehyc53/1127

천익창이 본 이왕직 아악부 마지막 악기장 강상기 전, 후 한국의 악기장 http://blog.naver.com/hyc53/50109827423


■ 천익창 경력및 활동
http://iboard2.superboard.com/board.cgi?db=28_dwhyc53noti251&idx=8&page=8

유튜브에 개설된 천익창의 동영상 사이트
http://www.youtube.com/hyc53#p/u
http://www.youtube.com/hyc53?gl=KR&hl=ko#g/u

천익창( Ikchang Cheon) 010-8790-7776, E-mail: hyc53@dreamwiz.com



2011년 12월 28일 수요일

일제시대 일제문화의 상징 산조가야금 변천사

일제시대 일제문화의 상징 산조가야금 변천사







일제시대 일본인이 고안하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제소자들에 의해 강제로 제작된 산조 가야금



(좌측) 일제시대 초기제작

좌단 부분이 가죽으로 덮혀져 있다

위판 부들쪽에 매화 장식이 선명한 나전칠기 자개 장식

좌단부분에 오사까 성 이미지 형상의 문양

목제의 건조과정을 거치지 않고 가구 처럼 표면처리를 하여 악기가 무겁고 공영이 약할수 있다

현침 줄걸이 부분이 고토와 동일하고,

봉미 두깨가 1cm에 불가해 12현의 장력을 견딜수 없게 제작되어 실제적으로 사용이 불가능하게 제작

초기 제작단계에는 못을 사용한 흔적이 있다

봉미 모양이 몸통넓이 보다 조금넓다

뒷면도 앞면처럼 가구 처럼 표면처리

뒷면 위로부터 초승달, 손잡이겸 공명홈, 아래원형의 홈


사진에 소개된 안족은 초기에 몸통과 함께 제작된 것이 아니고 후일 교환된 것임.




(우측)일제시대 초기에 제작된 산조가야금의 문제점을 개선하여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된 산조가야금

일제시대 기방 가야금(길이 약 143Cm, 넓이 약 20. 5Cm)

일제시대 기방 가야금, 오른손이 닫는 머리판(좌단) 초승달, 쌍희 희(囍), 일본을 상징하는 일장기

사쿠라(벚꽃) 기방 가야금 옆면 사쿠라(벚꽃)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자개꽃 장식

기방 가야금 뒷면 위로부터 초승달, 손잡이겸 공명홈, 아래원형의 홈과 대나무,



일제시대 산조가야금은 조선시대 풍류가야금과 달리 일본도(日本刀)가 악기 속으로 들어갈 수 없음

기방(妓房) 가야금, 가방(케이스) 이중 지퍼(자크) 경계선에 칸막이가 있음, 내용물 검열시 윗쪽 지퍼만 열어도 내용물을 확인 할 수 있음.




좌로부터, 첫번째 일제시대 초기제작된 산조가야금, 두번째 문제점이 개선되어 제작된 산조가야금, 세번째 일제시대 후기에 절단된 절금

좌로 네번째, 우측 첫번째 2011년 현재 가장 많이 보급된 일반적인 형태의 산조가야금, 일제의 흔적이 대부분 제거 되었으나 기본적인 형태는 변함이 없으며, 제작자에 따라 여러가지 문양의 도안을 사용하며, 소뼈, 자개, 금, 옥, 칠보등으로 장식을 하기도 한다.



산조 가야금의 뒷면

우로부터, 첫번째 일제시대 초기 산조 가야금, 두번째 문제점이 개선된 일반화된 산조가야금, 세번째 일제시대 후기에 절금(折琴), 좌로 첫번째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산조가야금 일제시대 이후 현재까지 크게 변함이 없음을 알수 있다.

절금(折琴) 두쪽난 가야금 뒷면에 경첩을 붙여 악기를 접을 수 있음

일제후기 기생(남,여 연주자)들에 의해 잘려진 절금 제작당시 잘라져서 제작된 것이 아니며 제작후 잘려진 것임

일제시대 산조가야금의 특징이라면 이전 시기의 가야금(법금, 풍류, 정악)에 비해 악기의 몸통속에 흉기가 들어갈수 없는 특징이 있으며 이것은 기방(妓房) 출입을 하는 일본인의 안전을 위한 발상에 근거한다.

일제시대 한반도를 강점한 이미 대부분 고인이된 지배계층의 일본인 남성들은 조선인들을 살육한 증거를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으나 조선의 여인들을 자신들의 성의 노예로 생각한것 뿐만 아니라 그들이 고안한 기방(妓房) 섹스문화의 산물 산조가야금과 가야금산조 음악(즉흥음악)을 탄생하게 만들고 변태적 성적 취향은 이름난 기생의 생식기를 도려내어 포르말린 용액 속에 넣어 보관하는 비 인간적인 행위도 실천 하였다


시사저널 [1070호] 2010.04.21, 여인의 성기 적출 기사 바로보기: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1953#



황병기 산조 가야금 일제시대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


위사진은 지난 2009년 9월 9일자 연합뉴스에 "가야금 3대명인의 가야금, 광주에 온다" 라는 기사가 있었으며, 기사와 함께 김창조, 김죽파, 황병기 소장 가야금 사진이 함께 소개 되었다.


(좌측)
김창조(1856~1919)가야금, 조선시대(朝鮮時代)풍류 가야금

(중앙)
김죽파(김난초 1911~1989.9.10)산조가야금, 1989년 김죽파 사망전 고흥곤(1951~ ) 악기제작

(우측)
80-90년전 것으로 알려진 황병기소장 산조가야금

필자는 당시 위 기사를 접하고 광주 디자인비엔날레 전시장을 직접 방문하였으나 김창조, 김죽파 가야금은 현장에서 확인 할수 있었으나, 황병기 소장 가야금은 전시장에서 볼수 없어 안내원에게 문의 하였드니 전시장에 나왔으나 곧 소장자 측에서 회수해 갔다고 하여 몹시 실망하고 돌아온 일이 있다.

추정하건데 황병기소장 산조가야금이 원형이 훼손되지 않았다면 여러곳에서 일제의 흔적을 찾을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며 다시한번 일반인들에게 공개가 될수 있기를 희망 한다.


"가야금 3대명인의 가야금, 광주에 온다" 관련기사 바로보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856440




일제시대 일제문화의 상징 산조가야금 관련자료 바로보기;

일제시대 조선인 탄압의 현장과 일제문화의 상징 산조가야금
http://blog.paran.com/hyc53/46215537


산조가야금, 천익창의 일제시기 가야금(문화)이야기 -연화-
http://blog.daum.net/hyc53/14032019



한반도 현악기 역사 시대별자료 바로보기

조선시대 김창조 풍류가야금(정악, 법금)과 신라시대 신라금 바로보기;

http://blog.daum.net/hyc53/14032020


한반도 철기시대 현악기 바로보기;
http://cafe.naver.com/hyc53/50


한반도 신석기 시대 현악기 바로보기;
http://cafe.naver.com/hyc53/43


한반도 신석기 시대 비봉리 현악기 바로보기;
http://kr.blog.yahoo.com/ehyc53/1127


천익창이 본 이왕직 아악부 마지막 악기장 강상기 전, 후 한국의 악기장
http://blog.naver.com/hyc53/50109827423



천익창 경력및 활동
http://iboard2.superboard.com/board.cgi?db=28_dwhyc53noti251&idx=8&page=8



유튜브에 개설된 천익창의 동영상 사이트
http://www.youtube.com/hyc53#p/u
http://www.youtube.com/hyc53?gl=KR&hl=ko#g/u



천익창( Ikchang Cheon) 010-8790-7776,
E-mail: hyc53@dreamwiz.com

2011년 12월 26일 월요일

천익창 새해맞이 개량 해금 춘의정 연주회

천익창 새해맞이 개량 해금 춘의정 연주회


일 시: 2011.12. 23 ~ 2012. 1. 1 아침 7~8
장 소: 춘의정(부천시 원미구 춘의동 산 1-1번지)
문 의: 천익창 010-8790-7776. E-mail: hyc53@dreamwiz.com


연주내용

천익창의 신년 해맞이 개량 해금연주는 남북한, 세계 평화를 위한 기원 연주회로 남북한이 공유하고 있는 아리랑을 비롯한 다수의 민요와 세계평화 기원을 위한 세계인이 공유할수 있는 탑 어브더 월드를 비롯한 다수의 팝음악을 장르 제한 없이 12월 23일 부터 2012년 1월 1일까지 매일 약 1시간에 걸처 해뜨는 시간에 맞추어 연주하게 된다.

천익창의 개량해금은 2008년 아들의 군입대후 적막감에 빠져 있을 시기 무료함을 달례기 위해 만든 악기이며, 천익창 개량해금의 특징이라면 기존에 사용된 재료가 아닌 현대 첨단의 제질이 선택구성된 3옥타브 이상의 음역과 맑은 음색이 특징이며, 연주법은 기존의 주법과는 다른 천익창 개량가야금(창금) 활주법이 응용되어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며 장르에 제한 없이 연주할 수 있게 된 것이 특징이다.
또한 환경(장소)과 기후에 간섭받지 않는 특징이 있다.



천익창의 개량 해금(얼금)


춘의정(부천시 원미구 춘의동 산 1-1번지)




천익창의 개량해금(얼금)연주


유튜브에서 천익창이 만든 개량해금(얼금)연주로 민요를 포함한 각종음악 듣기:
http://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EC%B2%9C%EC%9D%B5%EC%B0%BD%EC%9D%98+%EC%96%BC%EA%B8%88&aq=f



관련자료:
중국의 얼후(二胡)와 천익창의 얼금(개량 해금)
http://blog.naver.com/hyc53/50118238875



■ 천익창 경력및 활동
http://iboard2.superboard.com/board.cgi?db=28_dwhyc53noti251&idx=8&page=8





유튜브에 개설된 천익창의 동영상 사이트
http://www.youtube.com/hyc53#p/u
http://www.youtube.com/hyc53?gl=KR&hl=ko#g/u

천익창( Ikchang Cheon) 010-8790-7776, E-mail: hyc53@dreamwiz.com


2011년 11월 23일 수요일

일제시대 조선인 탄압의 현장과 일제문화의 상징 산조가야금

일제시대 탄압의 현장과 일제문화의 산실 서대문 감옥(서대문 형무소)


일제시대 조선반도를 강점한 일본인의 조선인 탄압의 현장과 그들이 심어놓고 뿌리내린 기방문화의 상징 산조가야금



경성감옥(1908년 10월 21일)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 되면서 이에 항거하는 의병전쟁과 계몽운동등 국권회복운동이 전국에서 거세게 일자 일제는 한국민의 저항을 종식시키고 조기에 식민지화를 이루고자 한국민을 탄압하였다.

이에 대규모수감시설이 필요하여 1908년 10월 21일 서대문 현저동에 대규모 근대식 감옥을 신축 하였다.(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인용)

후일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 서울구치소, 국가사적지정,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명칭변경



1930년대 서대문 형무소


서대문 형무소 운영인력


1936년 일제시대 한반도 전국토가 감옥화


일제시대 서대문 형무소 독립운동가의 물고문


일제시대 서대문 형무소 독립운동을 한 여성들의 주리틀기 고문




민족의 빛 독립운동가 육성증언

...(여자들은)자궁에다 막대를 넣고 휘젓고..... 남자들은 성기에다 심을 박고 불지르는 거.... ...차라리 죽는 게 나았어 죽여 달라고 아우성을 치지 죽는게 낫거든 아픈것 보다 죽는 게 나아... (애국지사 이병희 증언중)


고문에 의한 고통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저항없이 목숨을 버렸든 400여명의 독립운동가들 일제시대 서대문 형무소 사형장


받침목이 놓여있고 밧줄이 걸려진 사형장 내부


사형수가 사형이 집행된후 시신이 떨어져 사망하게 되는 사형장 지하


시구문


고문으로 인해 볼수없을 정도의 처참히 훼손된 시신은 시구문(길이 약200m)을 통해 야산에 버려지게 되면 들짐승들에 의해 갈갈이 찧겨져 흔적 없이 사라지게 되었을 것이다.


시신이 없는 유관순 독립운동가의 초혼묘, 서대문 형무소에서 고문에 의한 방광파열로 옥사 하였다.(네이버 백과사전 인용)

유관순 초혼묘(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탑원리)


일제시대 일제문화의 산실 서대문 형무소 공작사, 수감된 제소자들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로 노동력을 착취당한 현장, 각종 관용물품과 군수용품를 생산하였다




노역의 현장 공작사


서대문 형무소 나전칠기 공장이 있던 자리 사각연못


이 연못은 일제강점기 재소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였던 나전칠기 공장이 있던 자리로, 해방이후에는 빨래터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연못바닥은 배수시설이 잘 되어 있으나 많은 양의 물이 안산에서 내려와 자연스럽게 고여 있는 것입니다.


가죽가공과 각종의류 염색을 위해 활용된 대형 물탱크(우물)


칼찬 교도관의 감시 감독아래 강제로 노동력을 착취당한 가죽제품제작의 제소자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의 소통의 수단 타벽통보법, 감옥에 수감된 독립운동가 들이 벽을 처서 암호를 교환함 도산 안창호와 김정련의 똥통 일화가 유명, 발각되면 살아 남지 못하였다.


일제시대 일본인에 의해 고안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교도관의 감시 감독아래 제소자에 의해 강제로 분업제작한 규격이 통일된 산조 가야금


일제시대 서대문 형무소에서 강제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산조가야금 아래판을 대패질하는 재소자


아마도 제작하는 자신들도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 알지 못하고 명령에 따랐을 것이다.(제작공정이 분업화)


일제시대 일본인에 의해 고안, 서대문형무소에서 강제로 제작된 규격이 통일된 산조 가야금


위판이 표면 처리 되어 있고 좌단 부분이 가죽으로 덮혀져 있다


위판 부들쪽에 매화 장식이 선명한 나전칠기 자개 장식


산조가야금 좌단부분에 오사까 성 이미지 형상의 문양


일본을 상징하는 일장기가 선명한 규격(약 143Cm X 20. 5Cm)이 통일된 산조 가야금(천익창 소장)


관련자료 바로보기; http://blog.daum.net/hyc53/14032019





조선반도를 강점한 일제시대 일본인들에 의해 고안되어 기생들에게 보급된 산조 가야금을 연주하는 기생, 연출되어 보고용으로 제작된 듯 하다.(이시기 조선인을 상대로 일본인이 제작한 사진중 이와 같이 여유롭고 화려한 사진은 흔치 않음)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산조가야금의 용도



일제시대 모든것이 일본의 통제권 안에 있었는데 일예로 전쟁터에 끌려다니며 성 노예가된 위안부 들이나 지배계층을 상대로한 고급 기생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시대 조선반도를 강점한 일본인은 조선의 여인들을 자신들의 성의 노예로 다루었으며 대표적인 예로 전쟁터에 끌려다니며 성을 착취당한 위안부가 있고 아직도 생존한 그들의 증언과 자료들은 추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한 지배계층을 상대로한 고급 기생들도 있었으며 기생들에게 보급된 산조 가야금의 용도는 무엇이 였을까.. 전쟁터 위안부 들이야 인격적 대우가 필요 하였겠는가, 여인이 들어 있는 막사에 줄서서 성적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젊은 군인들 모습은 상상이 어렵지 않다.

필자(천익창)는 악기연구를 평생을 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 현악기 가야금의 산조음악은 감상음악으로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데 30~60분이 넘는 음악을 즐길 수 없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전쟁터 젊은 군인들은 일이 끝나 여인의 막사에서 볼 일보고 나오면 자동으로 다음 순서가 들어가면 되지만 그래도 조선반도를 점령한 지배계층의 권력자들 이라면 전쟁터 군인들 처럼 놀수는 없는 일이다

가야금 산조(즉흥연주, 즉흥연주는 원래 원시음악에서 부터 있어왔음)음악에는 원래 고정되어 정해진 선율은 없지만 더 중요한 정해진 장단(리듬, 진양에서 휘모리까지 5~6개의 장단)은 있다

장단의 빠르기를 말하는 것인데 처음에 느리게 시작하여 격정적인 순간에 빠르게 끝나는데 이 리듬은 남녀가 분위기를 잡고 성행위의 과정을 거치는 흐름과 일치하며, 행위하는 남녀의 차이에 따라 장단의 빠르기가 달라지면 그기에 맞게 가야금 선율이 따라가게 되는데 이를 두고 가야금 산조는 선율 못지않게 장단을 중요시하게 된 것이다.

장고의 장단은 민망한 남녀의 피부의 마찰음을 중화 시키고,

가야금의 농현은 민망한 남녀의 교성을 중화시킨다

가야금 산조연주는 남녀의 행위시 발생하는 소리를 중화시켜 행위자를 편하게 하며,

밖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자를 위해 방안의 사정을 알려주는 소통의 수단으로 사용 되었다,

이와 같이 가야금 산조음악은 용도가 분명한 남녀 성행위의 배경음악이라 기방문화의 필수 항목이라 할 수 있었다.

이같이 매일 반복된 연주행위는 기량 연마가 자연스러워 상당한 수준의 연주자가 생겨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그동안 가야금 산조 음악이 왜 이렇게 인내심을 필요로 할까 생각했던 사람들 이라면 이제 그 이유가 이해 될 것이라 생각 된다, 가야금 산조 음악은 집중하여 감상하는 음악이 아니라 흘러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1970년대 초 프로 연주자로 전자올겐과 필자가 연구 개발한 전자가야금(창금)을 서울의 유명 나이트 컬럽. 극장식 홀등 대형무대에서 연주 하였는데 이시기 현재에도 있는 낙원상가 4층 허리우드 극장앞 옥상 광장에는 오후 시간부터 해질무렵까지 많은 악사들이 모여서 새 일자리도 탐색하고 교체되는 연주자들을 구하기도 하는 악사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장소가 있었다(지금도 악사들이 모이고 있는지 알수 없음)

이시기 필자는 나이든 요정악사들의 누드 연주 예기를 심심찮게 들을수 있었다 누드 연주란 말 그대로 관객이 벗고 있으니 악사가 입고 있다면 더 이상할 것이 아닌가 서로가 벗고서 각기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국내에 유입된 물소 뿔에 세겨진 남녀, 춘화(春畵 중국산)


이제 역사는 흘러 가해자도 피해자도 대부분 떠났지만 산조 가야금을 만들고 즐겨 했던 일본인은 제 자리로 돌아가고 악기와 음악은 남아 영문도 모르고 추종하는 일부의 문화 권력 기득권 자들에 의해 근거없는 구전 몇 조각을 오래된 전통으로 조작, 날조하여 나날이 증증장구하니

치욕의 역사가 한국문화의 대표문화로 군림하여 무형문화재가 되고, 교수가 되고, 감독이 되어 이땅의 진보적이고 창의적인 자생문화를 제압하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고 비극의 연속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 현악기 역사 시대별자료 바로보기


조선시대 김창조 풍류가야금(정악, 법금)과 신라시대 신라금 바로보기; http://blog.daum.net/hyc53/14032020

한반도 철기시대 현악기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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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신석기 시대 현악기 바로보기;
http://cafe.naver.com/hyc53/43

한반도 신석기 시대 비봉리 현악기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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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익창이 본 이왕직 아악부 마지막 악기장 강상기 전, 후 한국의 악기장 http://blog.naver.com/hyc53/50109827423



■ 천익창 경력및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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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 개설된 천익창의 동영상 사이트
http://www.youtube.com/hyc53#p/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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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익창( Ikchang Cheon) 010-8790-7776, E-mail: hyc53@dreamwiz.com

2011년 8월 28일 일요일

박칼린(Kolleen Park) 천새빛 가야금 하프로 비하 연구자 천익창의 입장

박칼린의 천새빛 48현가야금 하프로 규정한 것에 대한 악기, 주법개발자 천익창의 입장



"걱정돼요 제가 할 말 때문에" 공인 이라면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박칼린 유해매체 관련자료 바로보기;
http://search.daum.net/search?nil_suggest=btn&nil_ch=&rtupcoll=&w=tot&m=&f=&lpp=&bw=1005&bh=564&sug=&q=%B9%DA%C4%AE%B8%B0+%C0%AF%C7%D8%B8%C5%C3%BC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hty.top&where=nexearch&ie=utf8&query=%EB%B0%95%EC%B9%BC%EB%A6%B0+%EC%9C%A0%ED%95%B4%EB%A7%A4%EC%B2%B4&x=33&y=20

지난 2011년 8월 6일 케이블 텔리비젼 tvN에서는 코리아 갓 탤런트 4주차 시청자 투표에 의한 합격자가 선정되는 생방송 세미파이널이 있었으며 여기에서 8번째 참가자 천새빛은 48현(25+23) 가야금으로 전통민요 ‘아리랑’을 새롭게 편곡하여 연주 했다.

이날 심사위원 3명중 한명인 박칼린은 참가자가 무대에서 연주도 하기전 생방송 중에서

"하프는 '팅'하면 우리는 '팅~'음을 변환시키고 그게 그 국악의 맛과 서양음악하고 다른 점 중에 하나인데 두 손을 이걸 계속 뜯고 있으니까 하프에 불과한 거예요" 라며, 연주자가 무대에서 연주도 하기전에 하프를 모방하는 하프의 아류(亞流) 정도로 폄하(貶下)하는 발언을 함(실제로 방송됨)으로 시청자 스스로 판단력을 간섭 훼방 하였으며, 시청자 표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신의 주관적 견해를 시청자들에게 주지 시켰다

연주가 끝난후 투표 직전에도 세명의 심사위원중 박칼린은

“가야금이라는 악기에 특성이 있습니다. 몇 가지가. 하프가 아니라는 것. 밴딩 피치밴딩을 하는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농현들이나, 이것들이 없어서 저는 가야금을 왜 꼭 써서 하프 식으로 연주를 해야 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어요”‘

라고 하며 참가자 8명중 최하위 8등 순위를 줌으로 가장 가치없는 행위로 규정 지웠으며, 시청자들에게 가치없는 행위로 각인시킨 것은 참가자를 떨어뜨리기 위한 의도적 행위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사정이 이러 했음에도 불구하고 투표 집계에서 48현(25+23)가야금 연주자 천새빛은 팝핀에 주민정, 립씽크에 IUV, 와 함께 TOP3 에 포함되었으나 두명의 심사위원(박칼린외 1명)의 48현가야금을 끝내 배제 함으로 파이널 진출이 좌절 되었다.



TOP3에 선정된 립씽크에 IUV, 48현가야금 천새빛, 팝핀에 주민정

필자(천익창)는 어린 나이때 부터 음악을 하여 왔으며 가야금은 1973년부터 연구하여 왔다

무릇 악기의 존재기반은 비교될 수 없는 각자의 고유한 개성에 있으며 새롭게 탄생한 악기가 자신의 개성을 갖지 않고 기존의 어떤악기를 모방하는데 그친다면 그것을 연구개발한 자나 악기는 의미 없는 것이 될 것이다.

또한 타인이 평생을 연구하여 발표된 새로운 악기와 주법이 근거없이 폄하되어 전문적 지식이 없는 불특정 다수에게 사실과 다르게(허위사실) 인식시켜졌다면 허위사실을 유포한 당사자는 허위사실이 아님을 증명 하든가, 그렇지 못할경우 평생을 연구한 자의 훼손된 명예를 책임져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날 참가자(천새빛)가 연주한 악기의 세계 최초의 가야금 10손가락 연주법 및 악기 고안자로서 하프를 모방하는 하프의 아류 정도로 폄하(貶下)된 평가를 받은 치명적 명예를 손상 받았으며, 박칼린이 지적한 하프로 규정한 48현(25+23)가야금의 구체적으로 무엇이 하프인지 밝힐것을 요구하며, 하프식으로 연주 하였다고 한 어떤 부분 어디가 하프의 전유물인지 밝혀주길 바란다.

또한 박칼린이 지적한 가야금의 농현이란 일제시기 탄생한 산조가야금의 주법을 예기 한 듯하고, 일제 이전시기 조선시대 정악가야금(풍류, 법금)이나 훨씬 그 이전시기 신라시대 신라금에서는 일제시기 산조가야금 처럼 농현이 같지 않았으며, 악기의 구조적으로 농현이 같을수 없기 때문에 한국의 전통을 일제강점기 일본인과 그들에 동조하는 조선의 친일 권력자들의 선호했든 기방문화를 한국문화의 전통으로 잘못 알고 있는 듯하다.

또한 농현이란 일제시기 기방여인(技生)들에 의해 주로사용된 12현 산조가야금에서 표현 할 수 있는 표현 방법중 주된 표현 방법이며, 또한 12가닥의 줄로 표현 할 수있는 표현의 한계 이지만, 현재 많은 개량가야금이 연주 되고 있는 시점에서 농현은 가야금 이라는 악기의 표현방법중 하나에 속함으로 화음으로 표현하든 농현으로 표현하든 그것은 연주자 혹은 작곡자의 취향에 따른 선택의 문제이며, 이번 코리아 갓 탤런트에 2분이라는 제한된 시간속에서의 표현이라면 연주자의 선택은 어쩔수 없는 선택적 사항이다

사실이 이와 같은데 박칼린의 방송을 통한 불특정 다수에게 하프를 모방하는 하프의 아류 정도로 폄하한 평가를 함으로 본 악기고안, 주법연구자 천익창은 치명적 명예를 훼손 당하였으며 그것을 빌미로 다른 언론과 인터넷을 통한 왜곡된 정보의 확대 재생산 유포는 원저작자의 명예를 지속적으로 훼손하고 있다

작금, 중국이 한반도 문화를 통채로 삼킬려하는 시기에 박칼린은 국내, 외 인터넷을 통한 진화된 가야금과 새로운 10손가락 표현법(주법)의 아리랑을 부정함으로 한민족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한국인이면 할수 없는 엄중한 반민족적 행위를 한 것이다.

박칼린은 예선때 60119번 참가자 천새빛 캐논연주 48현(23+25) 가야금을 처음 본다고 직접 방송을 통해 말 하였으며, 악기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음을 암시 하였다.

박칼린은 뮤지컬 배우를 선택할때 남모르게 알아본다는 신중한 그가 예선때와 전혀다른 모습으로 돌변하여 세미파이널에서는 하프가 어쩌구, 농현이 어쩌구 하면서 적극적 거부로 폄하 하는 모습은 누구의 사주(使嗾)를 받은듯한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필자(천익창)가 평생 연구하고 천새빛이 연주한 48현(23+25) 가야금은 2007년 제1회 대한민국 동영상 UCC대상을 받았고, SBS 스타킹비롯 여러방송 매체의 소개와 해외 한국문화의 소개로 국가의 이미지에 큰 긍정적 도움을 주어왔다,

이번 tvN 코리아 갓 탤런트 제작진의 자신감 있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참가한 참가자 측에게도 책임이 없진 않지만 이와 같이 출연자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심사위원의 평가가 있을 줄 꿈에도 상상 못한 사실에 황망한 후회 스러움이 필자를 괴롭힌다.

필자가 보건데 박칼린은 자신이 아는 가벼운 상식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위험한 행위는 자칫 한반도 진보적 문화발전에 치명적 손상을 입힐 수 있는 반민족적 행위로 경계의 대상이 될수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고. 또한 대다수 국민들에게 가야금 만큼이나 생소한 하프라는 악기를 비교한 박칼린의 한국인을 무시한 오만한 발언은 한국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것이라 아니할수 없다.

다시한번 하프의 어떤 부분이 하프의 전유물로 48현가야금이 하프를 흉내낸 것인지 밝혀 줄것을 요구 하며,

이 기회에 아직도 생소하여 박칼린의 발언에 현혹된 일반인들을 위해 필자가 알고 있는 하프와 필자가 고안 개발한 48현(25+23)가야금의 차이점을 비교 설명하겠다.


47현 그랜드하프(harp)와 48현(25+23)가야금의 차이1) 외형적 차이(이미지로 비교)
2) 주법적 차이(영상과 악보로 비교)
3) 악기의 음색(소리)의 차이(유튜브 영상으로 비교)


1) 47현 그랜드하프(harp)와 48현(23+25) 가야금의 외형적 차이(이미지 비교) 천새빛 23, 25현 두대의 가야금(48현) 독주(2003. 12. 26 , 부천시민회관 초연)
포토: 오마이뉴스, 김영조기자 2004.07.01 (개량 가야금의 달인, 천익창을 만나다 중에서)
무대:국립국악원 우면당.


아래 사진은 국내 수입된 여러종류(약 5천만원~ 1억원)의 하프중 하프 역사상 가장 발전된 연주용 47현 금장식 그랜드 하프이며, 하프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이미 3~ 5현 등의 숫자가 작은 한손에 들고 한손으로 연주하는 "리라(lyra)"라는 악기가 오랜 세월동안 지속적으로 진화 발전하여 오늘의 47현 하프까지 악기의 발전과 양손 8손가락 연주법의 발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최근에 국내에 수입된 47현 금장식 그랜드 하프(harp)


페달이 없는 수동 하프


2) 연주법에서의 차이


이미 48현 가야금 연주법은 각종 동영상 자료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각기 음색과 재질이 다른 두대(23현+25현)의 악기가 수평적으로 구성된 양손 10손가락 연주법으로 양손이 각기 독립된 연주법 임을 확인 할 수 있고 이와 같은 가야금 10손가락 연주법은 세계적으로 비슷한 계열의 악기인 중국의 쟁, 일본의 고토, 북한의 21현가야금 등등...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지금까지 시도 된적이 없으며, 필자가 연구개발한 400여 가지 주법중 곡에 따라 선별적으로 선택하여 연주하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천새빛에게 전수된 세계유일의 연주법이다.

유튜브 천새빛 동영상:
http://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EC%B2%9C%EC%83%88%EB%B9%9B&aq=f


하프의 연주법은 악기의 수직적 자세에서 가슴에 안은듯 양손으로 껴안은듯 연주하되 새끼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으며 아래 제시된 하프 악보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양손 1~4번 까지 표시된 것을 확인 할수 있고, 유튜브 동영상 사이트에서 하프(Harp)를 검색하면 1만 8천여개의 수많은 동영상에서 48현(23+25) 가야금에 비해 다양하지 않은 연주법을 확인 할수 있다.


하프의 운지법 양손 8손가락사용 악보에서의 숫자는 양손가락 표시

유튜브 하프(Harp)연주:
http://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Harp


3) 음색(소리)에서의 차이 캐논으로 비교


48현(25+23)가야금 캐논 동영상 (천새빛연주):
http://www.youtube.com/watch?v=HfmvRqRtMak




1천여개가 넘는 하프 캐논(Harp Canon) 동영상:
http://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Harp+Canon


결론

위에서 지적한 외형적 차이, 주법적 차이, 악기의 음색(소리)의 차이등을 볼때 48현가야금에 무엇이 하프를 흉내낸 것인지 확인 할 수 없고, 만약 두대의 각기다른 음색의 하프를 양손 10손가락 연주법으로 따로 따로 연주했다면 흉내낸 것이 이해될수 있지만 박칼린의 하프로 비하 발언은 이해될수 없는 발언이다.

그동안 관현악에 있어 하프는 홀로 장시간 앉아 있다 아르페지오 부분에서 기껏 효과를 발휘하는 정도의 악기로서 최근 진보적 성향의 연주자들에 의해 독주용 악기로 연주 도전을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볼 수 있으나 연주 자세에서 오는 한계는 48현 가야금에서 표현되는 수백가지 주법을 따라오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이번 박칼린의 발언은 특이하고 새로운 것은 외국 것을 흉내낸 것일 것이라는 박칼린의 한국인 비하, 지레짐작에서 오는 사대주의 사상이 내재된 속단이 만들어낸 결과 이거나 예선과 결선에서 돌변한 태도로 보건데 누구의 사주(使嗾)를 받은 결과인지 의구심을 떨쳐 버릴수 없고, 사주에 대한 포상이 무엇인지 이후 행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사주를 받지 않았다면 박칼린은 하프의 전유물은 무엇이며, 48현 가야금이 하프를 흉내낸 것을 증명하길 바라는 해명이 있기를 바란다.



2011. 8. 27. 48현(23+25)가야금 고안, 주법개발자 천익창.


위 내용과 관련한 동영상포함 자료 모음

[코리아 갓 탤런트]세미파이널 넷째주 - 8번 천새빛

http://www.pandora.tv/category.ptv/video/category/c1/01/c2/0097/ch_userid/matey1/prgid/42989842
http://blog.naver.com/matey1?Redirect=Log&logNo=80136907341


유튜브 동영상

천새빛_Korea's Got Talent 2011 Semi-Final Week4
http://www.youtube.com/watch?v=CiBZIpnkjzM
http://www.youtube.com/embed/CiBZIpnkjzM?fs=1"


코리아 갓 탤런트 서울 지역예선 - 천새빛(연주)
* 아래주소 한번 클릭에 표시되지 않을수 있음, 반복클릭 필요.
http://tvn.lifestyler.co.kr/vod/VODView/201111048306/240745/12962




뉴스보도


‘코갓탤’ 천새빛 가야금 연주, 박칼린 “가야금은 하프가 아냐”

뉴스엔 연예 2011.08.07 (일) 오전 0:40


코갓탤, 여고생 대란보다 통쾌했던 박칼린의 반란

미디어스 칼럼 2011.08.07 (일) 오후 5:30


■ 천익창 경력및 활동
http://iboard2.superboard.com/board.cgi?db=28_dwhyc53noti251&idx=8&page=8



유튜브에 개설된 천익창의 동영상 사이트http://www.youtube.com/hyc53#p/u
http://www.youtube.com/hyc53?gl=KR&hl=ko#g/u


천익창( Ikchang Cheon) 010-8790-7776,
E-mail: hyc53@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