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3일 수요일

일제시대 조선인 탄압의 현장과 일제문화의 상징 산조가야금

일제시대 탄압의 현장과 일제문화의 산실 서대문 감옥(서대문 형무소)


일제시대 조선반도를 강점한 일본인의 조선인 탄압의 현장과 그들이 심어놓고 뿌리내린 기방문화의 상징 산조가야금



경성감옥(1908년 10월 21일)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 되면서 이에 항거하는 의병전쟁과 계몽운동등 국권회복운동이 전국에서 거세게 일자 일제는 한국민의 저항을 종식시키고 조기에 식민지화를 이루고자 한국민을 탄압하였다.

이에 대규모수감시설이 필요하여 1908년 10월 21일 서대문 현저동에 대규모 근대식 감옥을 신축 하였다.(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인용)

후일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 서울구치소, 국가사적지정,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명칭변경



1930년대 서대문 형무소


서대문 형무소 운영인력


1936년 일제시대 한반도 전국토가 감옥화


일제시대 서대문 형무소 독립운동가의 물고문


일제시대 서대문 형무소 독립운동을 한 여성들의 주리틀기 고문




민족의 빛 독립운동가 육성증언

...(여자들은)자궁에다 막대를 넣고 휘젓고..... 남자들은 성기에다 심을 박고 불지르는 거.... ...차라리 죽는 게 나았어 죽여 달라고 아우성을 치지 죽는게 낫거든 아픈것 보다 죽는 게 나아... (애국지사 이병희 증언중)


고문에 의한 고통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저항없이 목숨을 버렸든 400여명의 독립운동가들 일제시대 서대문 형무소 사형장


받침목이 놓여있고 밧줄이 걸려진 사형장 내부


사형수가 사형이 집행된후 시신이 떨어져 사망하게 되는 사형장 지하


시구문


고문으로 인해 볼수없을 정도의 처참히 훼손된 시신은 시구문(길이 약200m)을 통해 야산에 버려지게 되면 들짐승들에 의해 갈갈이 찧겨져 흔적 없이 사라지게 되었을 것이다.


시신이 없는 유관순 독립운동가의 초혼묘, 서대문 형무소에서 고문에 의한 방광파열로 옥사 하였다.(네이버 백과사전 인용)

유관순 초혼묘(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탑원리)


일제시대 일제문화의 산실 서대문 형무소 공작사, 수감된 제소자들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로 노동력을 착취당한 현장, 각종 관용물품과 군수용품를 생산하였다




노역의 현장 공작사


서대문 형무소 나전칠기 공장이 있던 자리 사각연못


이 연못은 일제강점기 재소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였던 나전칠기 공장이 있던 자리로, 해방이후에는 빨래터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연못바닥은 배수시설이 잘 되어 있으나 많은 양의 물이 안산에서 내려와 자연스럽게 고여 있는 것입니다.


가죽가공과 각종의류 염색을 위해 활용된 대형 물탱크(우물)


칼찬 교도관의 감시 감독아래 강제로 노동력을 착취당한 가죽제품제작의 제소자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의 소통의 수단 타벽통보법, 감옥에 수감된 독립운동가 들이 벽을 처서 암호를 교환함 도산 안창호와 김정련의 똥통 일화가 유명, 발각되면 살아 남지 못하였다.


일제시대 일본인에 의해 고안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교도관의 감시 감독아래 제소자에 의해 강제로 분업제작한 규격이 통일된 산조 가야금


일제시대 서대문 형무소에서 강제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산조가야금 아래판을 대패질하는 재소자


아마도 제작하는 자신들도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 알지 못하고 명령에 따랐을 것이다.(제작공정이 분업화)


일제시대 일본인에 의해 고안, 서대문형무소에서 강제로 제작된 규격이 통일된 산조 가야금


위판이 표면 처리 되어 있고 좌단 부분이 가죽으로 덮혀져 있다


위판 부들쪽에 매화 장식이 선명한 나전칠기 자개 장식


산조가야금 좌단부분에 오사까 성 이미지 형상의 문양


일본을 상징하는 일장기가 선명한 규격(약 143Cm X 20. 5Cm)이 통일된 산조 가야금(천익창 소장)


관련자료 바로보기; http://blog.daum.net/hyc53/14032019





조선반도를 강점한 일제시대 일본인들에 의해 고안되어 기생들에게 보급된 산조 가야금을 연주하는 기생, 연출되어 보고용으로 제작된 듯 하다.(이시기 조선인을 상대로 일본인이 제작한 사진중 이와 같이 여유롭고 화려한 사진은 흔치 않음)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산조가야금의 용도



일제시대 모든것이 일본의 통제권 안에 있었는데 일예로 전쟁터에 끌려다니며 성 노예가된 위안부 들이나 지배계층을 상대로한 고급 기생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시대 조선반도를 강점한 일본인은 조선의 여인들을 자신들의 성의 노예로 다루었으며 대표적인 예로 전쟁터에 끌려다니며 성을 착취당한 위안부가 있고 아직도 생존한 그들의 증언과 자료들은 추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한 지배계층을 상대로한 고급 기생들도 있었으며 기생들에게 보급된 산조 가야금의 용도는 무엇이 였을까.. 전쟁터 위안부 들이야 인격적 대우가 필요 하였겠는가, 여인이 들어 있는 막사에 줄서서 성적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젊은 군인들 모습은 상상이 어렵지 않다.

필자(천익창)는 악기연구를 평생을 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 현악기 가야금의 산조음악은 감상음악으로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데 30~60분이 넘는 음악을 즐길 수 없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전쟁터 젊은 군인들은 일이 끝나 여인의 막사에서 볼 일보고 나오면 자동으로 다음 순서가 들어가면 되지만 그래도 조선반도를 점령한 지배계층의 권력자들 이라면 전쟁터 군인들 처럼 놀수는 없는 일이다

가야금 산조(즉흥연주, 즉흥연주는 원래 원시음악에서 부터 있어왔음)음악에는 원래 고정되어 정해진 선율은 없지만 더 중요한 정해진 장단(리듬, 진양에서 휘모리까지 5~6개의 장단)은 있다

장단의 빠르기를 말하는 것인데 처음에 느리게 시작하여 격정적인 순간에 빠르게 끝나는데 이 리듬은 남녀가 분위기를 잡고 성행위의 과정을 거치는 흐름과 일치하며, 행위하는 남녀의 차이에 따라 장단의 빠르기가 달라지면 그기에 맞게 가야금 선율이 따라가게 되는데 이를 두고 가야금 산조는 선율 못지않게 장단을 중요시하게 된 것이다.

장고의 장단은 민망한 남녀의 피부의 마찰음을 중화 시키고,

가야금의 농현은 민망한 남녀의 교성을 중화시킨다

가야금 산조연주는 남녀의 행위시 발생하는 소리를 중화시켜 행위자를 편하게 하며,

밖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자를 위해 방안의 사정을 알려주는 소통의 수단으로 사용 되었다,

이와 같이 가야금 산조음악은 용도가 분명한 남녀 성행위의 배경음악이라 기방문화의 필수 항목이라 할 수 있었다.

이같이 매일 반복된 연주행위는 기량 연마가 자연스러워 상당한 수준의 연주자가 생겨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그동안 가야금 산조 음악이 왜 이렇게 인내심을 필요로 할까 생각했던 사람들 이라면 이제 그 이유가 이해 될 것이라 생각 된다, 가야금 산조 음악은 집중하여 감상하는 음악이 아니라 흘러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1970년대 초 프로 연주자로 전자올겐과 필자가 연구 개발한 전자가야금(창금)을 서울의 유명 나이트 컬럽. 극장식 홀등 대형무대에서 연주 하였는데 이시기 현재에도 있는 낙원상가 4층 허리우드 극장앞 옥상 광장에는 오후 시간부터 해질무렵까지 많은 악사들이 모여서 새 일자리도 탐색하고 교체되는 연주자들을 구하기도 하는 악사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장소가 있었다(지금도 악사들이 모이고 있는지 알수 없음)

이시기 필자는 나이든 요정악사들의 누드 연주 예기를 심심찮게 들을수 있었다 누드 연주란 말 그대로 관객이 벗고 있으니 악사가 입고 있다면 더 이상할 것이 아닌가 서로가 벗고서 각기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국내에 유입된 물소 뿔에 세겨진 남녀, 춘화(春畵 중국산)


이제 역사는 흘러 가해자도 피해자도 대부분 떠났지만 산조 가야금을 만들고 즐겨 했던 일본인은 제 자리로 돌아가고 악기와 음악은 남아 영문도 모르고 추종하는 일부의 문화 권력 기득권 자들에 의해 근거없는 구전 몇 조각을 오래된 전통으로 조작, 날조하여 나날이 증증장구하니

치욕의 역사가 한국문화의 대표문화로 군림하여 무형문화재가 되고, 교수가 되고, 감독이 되어 이땅의 진보적이고 창의적인 자생문화를 제압하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고 비극의 연속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 현악기 역사 시대별자료 바로보기


조선시대 김창조 풍류가야금(정악, 법금)과 신라시대 신라금 바로보기; http://blog.daum.net/hyc53/14032020

한반도 철기시대 현악기 바로보기;
http://cafe.naver.com/hyc53/50

한반도 신석기 시대 현악기 바로보기;
http://cafe.naver.com/hyc53/43

한반도 신석기 시대 비봉리 현악기 바로보기;
http://kr.blog.yahoo.com/ehyc53/1127

천익창이 본 이왕직 아악부 마지막 악기장 강상기 전, 후 한국의 악기장 http://blog.naver.com/hyc53/50109827423



■ 천익창 경력및 활동
http://iboard2.superboard.com/board.cgi?db=28_dwhyc53noti251&idx=8&page=8

유튜브에 개설된 천익창의 동영상 사이트
http://www.youtube.com/hyc53#p/u

http://www.youtube.com/hyc53?gl=KR&hl=ko#g/u

천익창( Ikchang Cheon) 010-8790-7776, E-mail: hyc53@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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