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6일 금요일

'박칼린(Kolleen Park) 친언니 추정' 女, 여배우 청부살인 혐의

'박칼린 친언니 추정' 女, 여배우 청부살인 혐의 
  

자료출처;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ixCpl-GDHdI
  



[앵커]
유명 음악인 박칼린 씨의 친언니로 추정되는 박켈리 씨가 미국에서 여배우를 청부 살인한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아예 별명이 '여자 제임스 본드'로,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돈을 받고 뛰어난 해결사 노릇을 했다고 하는데, 이게 무슨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기사 더 보실 분 아래 클릭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8/2012101802631.html




음악감독 박칼린씨의 친언니로 알려진 박켈리(켈리 수 박, Kelly Soo Park)씨가
청부살인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미국 ABC 뉴스 등 외신들은 "LA 검찰이 지난 2008년 3월 목 졸려 살해된 할리우드 모델 줄리안 레딩(Juliana Redding)을 살인청부한 혐의로 켈리 박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켈리 박은 현재 박칼린씨의 친언니로 알려졌다.

LA검찰은 켈리 박이 카레이서이자 동거남인 로니 케이스와 함께 레딩을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21세였던 레딩은 2008년 3월 15일에 산타모니카의 자택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레딩이 심하게 폭행당해 숨졌고, 고문을 당한 흔적도 있다고 발표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외신은 "켈리 박이 유명 의사인 무니르 우웨이다 청부를 받아 켈리 박이 자신의 전 남자친구인 로니 케이스와 살인을 공모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켈리 박 측은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출처;
http://www.youtube.com/watch?v=aXxi2BN4Fro&feature=player_embedded



The murder of an aspiring model and actress in 2008, after a business deal went wrong, may have been perpetrated by a debt collector nicknamed "James Bond" and hired as "muscle."

Juliana Redding, 21, had posed for Maxim magazine and appeared in a bit role in a movie before she was strangled more than four years ago. Recently released court documents claim the attack was driven by a failed business deal between her father and an ex-boyfriend, Lebanese physician and businessman Munir Uwaydah, The Los Angeles Times reports.

Uwaydah allegedly "dispatched" his employee Kelly Soo Park -- officially his real estate broker and financial assistant -- to "confront" Redding after her father pulled out of a pharmaceutical deal on doubts of Uwaydah's legitimacy.

Prosecutors allege that Park, who Uwaydah called "James Bond," had served as his "debt collector" and intimidated business partners of Uwaydah's in at least two previous incidents with her then-boyfriend, racecar driver Ronnie Case. One incident involved intimidating a bank manager over an investment scheme, another a horse breeding business and $350,000 collection, CBS News reports.

Uwaydah, however, who has since fled the country and is now believed to be living in Lebanon, allegedly only hired Park to "intimidate and threaten" Redding, not to murder her, according to the LAT.

Park, who has been linked to the murder scene via "forensic evidence," has pleaded not guilty and awaits a pretrial conference set for October 24, ABC News reports. She has been accompanied at court appearances by her fiance, retired Oxnard Police Commander Thomas Chronister, according to CBS News.

This is not the first time a so-called debt collector has been linked with a homicide, nor that a business deal gone wrong has ended in violence. In 2011, three debt collectors hired by Citibank were arrested in Indonesia in connection with the death of Irzen Octa, a businessman with a $12,500 outstanding debt to the bank.
http://www.youtube.com/watch?v=2OR1jyw5t58

Kelly Soo Park
http://www.google.co.kr/search?complete=1&hl=ko&q=Kelly+Soo+Park

California Police Arrest Kelly Soo Park in 2008 ...

abcnews.go.com2012년 10월 17일Kelly Soo Park is accused of killing Juliana Redding in alleged murder-for-hire plot.

2012년 8월 15일 수요일

국립국악원 "그 아이 유관순" 이게 무슨 말 (국악박물관 신라금 관련)

국립국악원 "그 아이 유관순" 이게 무슨 말 (국악박물관 신라금 관련)


한국역사에 유관순은 독립운동의 상징, 애국자의 상징이라고 한다면 의의를 제기할 수 있는 한국사람이 있겠는가? 

만약에 유관순을 "그 아이" 라고 한다면 친일파 이거나 일제식민 시절을 찬양하는 자들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최근 국립국악원에서 "그 아이 유관순" 이라는 이름의 제목을 볼때 친일파 총수가 세운 국립국악원 답다는 생각을 했다.

국립국악원 하면 그 상징적 인물은 일제시대 일본천황을 찬양하고 조선의 젊은이 들을 2차 세계대전에 총알받이, 위안부로 몰아 넣는데 일등공신을 한 친일 매국노 김기수가 설립한 공공기관으로 끊임 없이 역사를 조작, 왜곡(歪曲)을 습관적으로 하는 일을 보면서 진정으로 국립국악원이 존재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는 국가의 공익단체인지 다시한번 생각 한다.

필자는 이전에도 여러차례 국립국악원의 왜곡, 조작된 사례를 지적하여 왔으나 최근 개관(2012. 8. 6)한 국립국악박물관의 왜곡, 조작된 전시물을 보면서 그들의 왜곡, 조작은 상습적이고 습관적이며 스스로 개선 할 수 없는 사안 임을 재삼 확인 하였다.

(* 필자가 이 글을 쓰기전 국립국악박물관 총책임자 주재근에 민원을 메일로 여러차례 발송하였으나 확인조차 하지 않았음) 

그러면 새롭게 개관된 국악박물관 전시물중 조작, 왜곡, 저작권침해 등의 사례를 열거 한다.

가장 크게 눈에 띄는 것은 2층 원류음악실이며 여기에 전시된 대 다수의 복원품은 사실이 왜곡된 조작품이며 이미 여러차례 지적된 사실이 있다



백제금동향로에 소개된 백제악기로 소개된 악기들



삼한시대 악기로 복원한 신창동 유물


관련자료 자세히 보기:
 http://blog.daum.net/hyc53/14032040


이번에 새롭게 조작되고 원 저작자의 저작권이 침해된 사안은 고흥곤 복원품으로 소개된 신라금이다.

박물관이 새롭게 개관되기전 전시에서는 아래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모습이다



박물관이 새롭게 개관되기전 국립국악박물관 고흥곤(중요무형문화재 42호 악기장) 복원 제작의 신라금(아래)



이번(국립국악박물관개관 2012. 8. 6)에 새롭게 전시된 고흥곤(중요무형문화재 42호 악기장) 복원의 신라금



천익창의 2004년 복원 발표된 신라금


이번 국립국악박물관에 전시된 고흥곤복원 신라금으로 소개된 전시물은 댕기모양 부들이 이미 발표된 천익창복원 신라금을 모방하여 만들어 진 것을 사진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위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방한 과정을 확인한 결과 댕기모양의 부들 모습을 국악원측에서 요구하여 제작자가 그렇게 하였다는 말을 들음으로 국립국악원은 끊임 없이 조작 왜곡을 상습적이고 습관적으로 지시, 종용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바라건데 중국의 한반도를 통체로 삼킬(동북공정)려고 하는 시기에 외세로 부터 대응은 커녕 스스로 조작과 날조에 집착하는 국립국악원 정말 국민의 막대한 혈세를 투자할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심 한다


천익창 신라금복원 Ikchang Cheon Korean 新羅琴 新羅時代 絃樂器紹介 2005년 TV역사스페셜, 토우 장경호(長頸壺) 국보 195호 古樂器 a long time ago instrument 진품소장 일본 정창원(正倉院) 한국음악(韓國音樂 Korean Traditional Music ) 국악기 복원 악기( Restored instruments ) 고대악기(古代樂器)


천익창 신라금 1
천익창 신라금복원(2004) Ikchang Cheon Korean 新羅琴 新羅時代 絃樂器紹介 2005년 TV역사스페셜, 토우 장경호(長頸壺) 국보 195호 古樂器 a long time ago instrument 진품소장 일본 정창원(正倉院) 한국음악(韓國音樂 Korean Traditional Music ) 국악기 복원 악기( Restored instruments ) 고대악기(古代樂器)



한반도 현악기 역사 시대별자료 바로보기


조선시대 김창조 풍류가야금(정악, 법금)과 신라시대 신라금 바로보기;
http://blog.daum.net/hyc53/14032020


한반도 철기시대 현악기 바로보기;
http://cafe.naver.com/hyc53/50


한반도 신석기 시대 현악기 바로보기;
http://cafe.naver.com/hyc53/43


한반도 신석기 시대 비봉리 현악기 바로보기;
http://blog.daum.net/hyc53/14032011


천익창이 본 이왕직 아악부 마지막 악기장 강상기 전, 후 한국의 악기장
http://blog.naver.com/hyc53/50109827423




천익창 경력및 활동

유튜브에 개설된 천익창의 동영상 사이트
 http://www.youtube.com/hyc53#p/u
 http://www.youtube.com/hyc53?gl=KR&hl=ko#g/u 

천익창( Ikchang Cheon) 010-8790-7776,
E-mail:
hyc53@dreamwiz.com


2012년 2월 24일 금요일

국립국악원 조작과 날조만 일삼는다면 해체되어야 마땅-천익창-

국립국악원 국가, 국민의 이익과 설립목적에 부합하는가?... 조작과 날조만 일삼고 외세에 대응 능력이 없고 사조직화 되었다면 해체되어야 마땅-천익창-

국립국악원은 1951년 4월 10일 설립된 국립음악기관으로 설립목적은 민족음악의 보존 및 창조적 전승에 있다.

그러나 진정한 민족음악의 보존과 창조적 전승을 지속적으로 방관 외면 방해하고 당면 현안인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 하지 못하고 사조직화 된 무능력한 조직이라면 해체 되어야 마땅하다.


국립국악원은 일제시대 1940년 세계2차대전 발발시기 일본천황을 찬양하고 조선의 젊은이 들을 전쟁터 총알 받이, 위안부로 몰아넣는데 일등공신을 한 친일 매국노 김기수를 비롯한 이왕직아악부 마지막 악사들에 의해 한국전쟁(6. 25, 韓國戰爭, Korean War)당시 피난지 부산에서 설립 되었다.

한국전쟁(6. 25, 韓國戰爭, Korean War)당시 300만명이 목숨을 잃고 대다수 국민의 생명 부지도 어려운 혼란스런 시기 황당하게도 피난지 부산에서 1951년 4월 10일 민족음악 보존과 창조적 전승이 목적 이라는 이름으로 설립 되었다.


국립국악원의 전신인 일제시대 이왕직아악부의 일본 천황찬양 황화만년지곡연주


일제시대 현 국립국악원의 전신인 이왕직아악부의 김기수작곡의 일본 천황찬양 황화만년지곡(皇化萬年之曲)연주(1940. 11. 9 부민관, 일본기원 2600년을 기념하는 봉축연)


세계2차대전 직전 1940년 일본 천황찬양 황화만년지곡 작곡한 김기수 동상


일본 천황찬양 황화만년지곡을 창작한 친일매국노 김기수 동상,

예술의 전당내 가장 높은 곳, 국립국악원 입구에 일제시대 일본천황을 찬양하는 황화만년지곡(1940년)을 작곡하고 발표한 김기수 동상이 그의 추종세력에 의해 세워져 있다.

친일매국노 김기수(金琪洙·光山哲三, 국악 작곡)-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1940년 11월 9일 일본기원 2600년을 기념하는 봉축연회에서 이왕직 아악부가 연주한 '황화만년지곡' 작곡. 이 곡은 이능화의 1939년 한문시에 곡을 붙여 일본기원 2600년 기념 공모 당선

국립국악원은 일제시대 친일 매국행위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에 의해 생겨난 성노리개 기생문화의 산물 산조가야금을 한국 전통 주류문화로 둔갑시켜 기득권 세력으로 성장 시켰으며 그들의 소임은 조작과 날조에 있는듯 하며 한국문화의 지속적 발전을 방해하고 진정한 한국문화의 미래도, 과거의 역사도 외면, 묵살하고 날조와 조작에 집착하며, 당면 현안인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 하지 못하는 사조직화 된 무능한 조직이라면 해체 되어야 마땅하다.

필자(천익창)는 그동안 변화를 기대하며 인내심으로 보아온 국립국악원 조직구성원 뿐만 아니라 간간히 바뀌는 원장자리 또한 취임때의 의욕은 충만하나 그것은 잠시 의례적인 것일 뿐 임기중 탈없이 해 먹고 떠나는 자리에 불과 하다.
필자(천익창)는 음악연구를 평생하고 있다
필자가 평생음악을 연구하며 보아온 국립국악원은 더이상 방치하고 외면할 수 없는 참을 수 없는 한계에 달하여 그동안 오랫동안 묵혀온 마음속의 진정한 속내를 들어낸다

필자는 어린시절부터 갖가지 악기를 좋아하고 배우고 익히길 스스로 좋아해 한시도 음악과 관련되 일을 놓아 본적이 없다.

특히 국악은 1973년 가야금을 시작으로 많은 악기를 복원도 하고 개량도 하여 왔다.

이제 내 나이 60이 넘어 이제는 바른소리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소리를 하여야 할것 같고 그것이 지금 내가 하여야 할 음악 작업중 현재의 단계라 생각 한다.

현재 한국의 국악계는 필자가 보고 체험한 경험에 비추어 신뢰 할수 없는 조작된 전통이라는 허울을 쓴 소수의 기득권 자들의 독점적 천국이며 그들의 눈에 우매한 국민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묵살하고 피같은 혈세를 꺼리낌없이 당당하게 소비해도 알지 못하는 눈먼 장님에 지나지 않는다

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한 국악계 일부 특권적 기득권자 들이 필자의 표현을 좋아 할 수 없을 것이나

현재 국립국악원이 초기 설립당시 설립 목적에 타당한 조직인지 필자가 그동안 보고온 사실들을 근거로 감히 설립목적과 위배되는 행동들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사실을 지적 하지 않을 수 없고, 국민을 우롱하고 기득권 출신조직의 세력 확장에 국립국악원의 사명이 다 있는양 하는 것에 경악 한다.

필자의 요구는 국립국악원이 지금같이 해 온것 처럼 국민을 기만하고 계속하여 똑같은 조작, 날조, 진취적 발전의 방해를 반복적으로 하고 당면 현안인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 하지 못하고 사조직화 된 무능한 조직이라면 해체 되어야 한국 국민의 온전한 민족음악의 보존과 창조적 전승이 가능할것 같아 다시한번 변화를 요구하며, 권력에 빌붙어 기생하는 체질로 변화가 불가능 하다면 해체 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 한다.

그러면 필자의 요구가 정당한 것인지 그동안 수십년 동안 보고 격어온 날조, 조작 사례를 열거 한다.


국립국악원의 조작 날조 사례

조작된 신라시대 신라금과 풍류 가야금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소장 날조 조작, 왜곡(歪曲) 복원된 풍류가야금(위), 신라금(아래)
복원제작자: 고흥곤, 위 신라금은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1988) 문화공보부장관상 수상,
1997.3. 24일 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 기능보유자 인정

관련자료 자세히 보기:
천익창복원(2004) 신라금[新羅琴]과 조선시대 풍류가야금 비교
http://blog.naver.com/hyc53/50105466743


삼한시대 현악기로 날조, 조작된 신창동 유물

삼한(마한)시대 현악기로 조작 소개한 광주 신창동 출토 유물


관련자료 자세히 보기:

국립중앙박물관 "우리악기 우리음악" 특별전과 관련하여, 2011/05/27
http://blog.naver.com/hyc53/50112268174

신창동 현악기 해석오류 전국 국공립박물관에서 철수 되어야 2009/01/30
http://blog.daum.net/hyc53/14032008

국립국악원 제9회 동양음악학국제학술회의, 복원악기전시와 관련하여 2005/09/03

국립국악원 고대악기 복원악기가 될 수 없는 이유 입니다. 2005/05/30



백제금동대향로의 악사상 백제시대 백제악사로 조작 복원된 백제시대 5인악사

백제 금동대향로 5인악사 백제악사로 날조 조작.

TJB 대전방송이 창사 10주년 특집프로그램으로 ‘백제금동대향로, 그 1400년 전의 소리’(2005년 7월27일 방영)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 주악상(奏樂像) 악기 5점 복원 국립국악원 연주단 연주 왼쪽부터 배소(排簫), 종적(縱笛), 완함(阮咸), 북(鼓), 거문고(玄琴)


중국 고대 유물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
국내에 유입된 중국 고대 유물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 * 이 악사들이 연주하는 악기가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의 악사들의 악기와 대부분 일치한다.


백제 금동대향로 5인악사 백제악사로 날조 조작.

관련자료 자세히 보기:
국보 287호 백제금동대향로 백제인의 작품인가? 2006/04/11
http://blog.naver.com/hyc53/50003359112


일제시대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기방(기생)문화의 상징 산조가야금을 한국 전통악기로 둔갑
일제시대 일본인에 의해 강제로 만들어져 기생들에게 공급된 산조 가야금

관련자료 자세히 보기:

일제시대 산조가야금 산조음악 탄생, 전후시기 조선에 있었던 악기들
http://blog.naver.com/hyc53/50132673811

일제시대 탄생한 산조 가야금 산조음악과 한국의 악기장
http://blog.naver.com/hyc53/50132087911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탄생한 산조 가야금 산조음악 감상법
http://blog.naver.com/hyc53/50131035207

일제시대 일제문화의 상징 산조가야금 변천사
http://blog.naver.com/hyc53/50130126673

일제시대 조선인 탄압의 현장과 일제문화의 상징 산조가야금
http://blog.naver.com/hyc53/50121795478

산조가야금, 천익창의 일제시대 가야금(문화)이야기 -연화-
http://blog.naver.com/hyc53/50097539880


민족음악 보존과 창조적 전승이 목적 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현재의 국립국악원
남부 순환도로 에서본 국립국악원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앞에서본 국립국악원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앞에서본 국립국악원



한반도 현악기 역사 시대별자료 바로보기
조선시대 김창조 풍류가야금(정악, 법금)과 신라시대 신라금 바로보기;
http://blog.daum.net/hyc53/14032020


한반도 철기시대 현악기 바로보기;
http://cafe.naver.com/hyc53/50


한반도 신석기 시대 현악기 바로보기;
http://cafe.naver.com/hyc53/43


한반도 신석기 시대 비봉리 현악기 바로보기;
http://blog.daum.net/hyc53/14032011

천익창이 본 이왕직 아악부 마지막 악기장 강상기 전, 후 한국의 악기장
http://blog.naver.com/hyc53/50109827423


천익창 경력및 활동
http://blog.naver.com/hyc53/50148865107


유튜브에 개설된 천익창의 동영상 사이트
http://www.youtube.com/hyc53#p/u
http://www.youtube.com/hyc53?gl=KR&hl=ko#g/u

천익창( Ikchang Cheon) 010-8790-7776, E-mail: hyc53@dreamwiz.com

2012년 1월 29일 일요일

일제시대 산조가야금 산조음악 탄생, 전후시기 조선에 있었던 악기들

일제시대 산조가야금 산조음악 탄생,
전후시기 조선에 있었던 악기들



석천 전일상(石泉 田日祥 1700~1753) 풍류가야금이 있는 그림



김홍도(1745~ ?) 무동, 북 장구, 피리2, 대금, 해금이 있는 그림


김홍도(1745~ ?)대금과 거문고가 있는 그림




신윤복(1758~? ) 풍류가야금이 있는 그림




신윤복(1758~? ) 거문고가 있는 그림




신윤복(1758~? ) 생황이 있는 그림




신윤복(1758~? )대금, 해금 거문고가 있는 그림




이형록(1808~ ? 조선시대 ) 거문고가 있는 그림




조선시대 거문고가 있는 그림



조선시대 후기 어린 기생들의 수업을 받는 모습 왼쪽부터 장구, 거문고 양금이 있는 사진




조선시대 후기 기생들의 수업을 받는 모습 왼쪽부터 양금, 거문고, 장구, 거문고가 있는 사진




조선시대 후기 기생들의 수업을 받는 모습 왼쪽부터 장구, 양금, 거문고가 있는 사진




조선시대 후기 악사들 왼쪽부터 피리, 해금, 거문고, 양금이 있는 사진



일제시대 초기에 촬영된 5명의 어린 기생들과 두대의 거문고



일제시대 초기에 촬영된 장구, 징, 부채 춤을 추는 여인과 거문고 타는 여인




흥선대원군(이하응 1820~1898) 풍류가야금(법금, 정악)




김창조 (1856~1919) 풍류가야금(법금, 정악)





일제시대 초기 1910년대



산조가야금 산조음악 탄생



일제시대 강제병합 직후 일제수뇌부 기념촬영(1916)




1915년경 촬영. 1910년 한일 합방후 산조가야금이 등장한 초기 사진으로 추정,



일제시대 일제가 만든 산조가야금을 기방에 전달하며 기념으로 촬영한 사진으로 추정,
왼쪽부터 첫번째 단발을 한 조선인, 기방의 책임자 이거나 이시기 단발을 한 것으로 보아 친일 하수인으로 추정,

두번째 책상다리가 어색한 일본인 관리나 악기제작을 담당한 교도관(간수) 혹은 제작에 관계한 자로 추정, 나머지 3명의 기생과 시범연주를 하는 2명의 기생 산조가야금 양금 시범연주

* 이 사진에서 보여지는 산조가야금 연주자의 자세를 살펴볼때 아래에 소개되는 사진과 비교하지 않을수 없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왼손의 모습이 거문고 연주 모습과 비슷하며, 표정 또한 시선이 왼쪽손으로 간것으로 보아 생소한 악기에 대한 호기심을 보이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1910년대 초 까지만 하여도 조선반도에 일반적으로 사용된 악기는 위에 열거한 사진에서 보는 바와같이 거문고, 양금, 해금, 대금, 피리, 징, 장구, 풍류가야금, 생황 등의 악기들이 였으나 1910년 일제 강점기가 시작된 이후 부터 엽서를 비롯한 각종 홍보 매체에 일제가 만든 산조가야금이 등장하며 일제문화의 대표 주류문화로 등장 하였다.


일제시대 일제문화의 상징 산조가야금 연주 자세가 숙련된 기생 1



일제시대 일제문화 상징 산조가야금 연주 자세가 숙련된 기생 2



일제시대 일제문화 상징 산조가야금 연주 자세가 숙련된 기생 3



일제시대 일제문화 상징 산조가야금이 등장한 악단

일제가 제작한 산조가야금은 엽서를 비롯한 각종 홍보 매체에 등장하지만 이전 시기에 흔하게 보여 졌던 거문고가 보이지 않는것은 일제는 거문고가 조선인들의 사상을 반영하는 악기로 규정 된 듯하고 필자(천익창)의 이전에 발표한 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김광주가 거문고를 제작 하였다고 하여 사상범으로 몰았다는 것은 일제는 조선악기의 사상적 뿌리를 거문고에 둔 듯 하다.

일제는 조선의 사상을 말살하고 일제가 만든 산조가야금을 보급한 것은 일제 식민지를 고착화 하기위한 방법으로 활용된 듯 하다.



일제시대 일제문화 상징 산조가야금 변화 과정 왼쪽부터 일제시대 초기제작된 산조가야금, 두번째 문제점이 개선된 산조가야금, 세번째 일제후기 절단된 산조가야금(절금), 2012년 현재 보편적 산조가야금.

일제는 일제강점기 그들이 만든 산조가야금을 한반도에 뿌리 내리게 하고 1945년 일제가 패망 한반도에서 철수한 후에도 한국인 스스로 그것을 한국전통문화로 둔갑하게 하여 중요무형문화재, 대학교수, 감독등 한국문화의 기득권 세력으로 우뚝서게 한것은 침략자의 야욕이 성공할수 있는 사례로 볼수 있기에 그들의 침략은 일정부분 성공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소장, 일제시대 민간에서 제작된 산조가야금과 북한의 21현 개량가야금



(좌)일제시대 간혹 민간에서 일제의 산조가야금을 모방한 가야금이 나오기도 하였다. 특징이라면 세련됨이 부족 하였고, 일제를 상징하는 문양이나 나전칠기 자개장식의 화려함이 부족 하였으며, 부들 메듭 공(孔)이 24공(孔)이 아닌 이전 현악기 제작 모양과 같은 12공(孔)을 사용하는 특징을 가지며, 규격이 통일되지 못하여 기생들에게 인기를 얻지 못하고 주류악기에 밀리어 지속적 발전을 하지 못하였다.

(우)북한의 21현 개량가야금 1990년 10.14~24 범민족통일음악회 시기 북한으로 부터 기증받은 여러 악기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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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1일 토요일

일제시대 탄생한 산조 가야금 산조음악과 한국의 악기장

일제시대 탄생한 산조 가야금 산조음악과 한국의 악기장


일제시대 일제는 우리전통문화 말살정책을 펴왔으나 그들이 고안하고 보급한 기방문화의 상징 산조가야금과 가야금 산조 음악은 확실하게 뿌리내려 현재 한국전통문화의 대표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

일제시대 일제는 조선악기를 만들면 사상법으로 몰아 자유로운 악기 제작 활동을 탄압 방해 하였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산조 가야금 산조 음악은 일제시기 기방문화로 정점에 달하였으며 2012년 현재까지도 여러지역에서 일제시기 제작된 산조가야금이 발견되며, 그 시기에 생겨난 여러 연주자들에 의해 그 맥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기득권 주류문화로 튼튼히 전승되고 있다.



일제시대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산조가야금과 2012년 현재까지도 사용되고있는 산조가야금


지난 1979.12. 8 일자 경향신문 "대를 잇는다, 보람에 사는 외길인생, 악기장 김광주옹~전수자 최세춘씨"에 따르면 한국최초의 악기장으로 중요무형문화재 42호로 인정(1971)받게 된 김광주 악기장의 악기를 처음 접하며 악기장으로 탄생되는 과정을 알수 있는 의미있는 기사가 있어 이 기회에 소개 하기로 한다.


(경향신문 1979.12. 8일자 " 대를 잇는다, 보람에 사는 외길인생(48) 악기장 김광주옹~전수자 최세춘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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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가 고향인 김옹은 27살이 될때까지 장가도 못가고 목공일로 생계를 잇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자전거를 타고 심부름을 가다가 웬 노인이 문을 열어놓고 거문고를 타고 있는 것을 보고는 돌부처 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참 소리가 듣기 좋더군, 물론 그때는 그 악기가 거문고인지 몰랐지, 도대체 처음 보는 것이 었으니까"

그일이 인연이 되어 낮에는 목공일을 하고 밤이면 그 노인을 찾아가 처음에는 탄주법을 배웠으나 곧 직업의식이 발동 않을수 없었다.

"만들어 보고 싶다"고 김옹이 그할아버지에게 간청했으나 자신도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니 안될것이라고 잘라 말했지만 김옹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거문고를 놓고 오동나무를 잘라다가 목공일하던 솜씨로 나무를 주무르기 1달만에 대강 흉내는 냈으나 소리가 제대로 날리 없었다. 그러기를 1년여, 나무와의 씨름에서 김옹은 드디어 승리할수 있었다. 고운 소리를 내는 거문고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깐이었어 일본형사가 조선 악기를 만든다고 사상범으로 몰아세우더구먼 할수없이 눈을 피해 방공호로 숨어들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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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79.12. 8일자 " 대를 잇는다, 보람에 사는 외길인생(48) 악기장 김광주옹~전수자 최세춘씨" 중에서)


김광주(1906~1984. 4)가 한국최초의 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받게 된 것은 1971년 그가 악기를 처음 알고 제작한 1933년 일제시대 후반기 그의 나이 27세때의 일이며 김광주 나이 39세때인1945년에 해방 되었고 악기 제작한지 38년 만에 중요무형문화재 42호 악기장이 되었다.

1984년 4월 김광주가 사망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 전통 국악기중 현악기들이 많은수 만들어 지고 있으며 중요무형문화재가 된 사람을 포함해 전국에 걸처 많은수 악기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김광주의 제자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악기 제작자들이 산조가야금을 역사가 깊은 우리의 전통악기로 알고 있는 것은 일제의 암흑기를 거치면서 예상치 않든 혼란스런 해방을 맞이하는 사이 대부분 생계가 다급한 백성들은 전통이 무엇인지 관심을 두지 않든시기에 마지막 이왕직아악부 몇남지 않은 예인들에 의해 새로운 조직이 형성 되어 그들에 의해 비판없이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발발시기 일본 천황을 찬양하며, 조선의 젊은 청년들을 전쟁터로 몰아넣은 황화만년지곡을 만들고 발표한 친일 인사인 김기수를 비롯 이왕직아악부 마지막 악사들에 의해 국립국악원이 생기고 국악사 양성소(현 국립국악고등학교)가 생겨나니 이전에 기방의 예인들 또한 그들과 합류하여 한국의 전통 주류문화로 발판을 다지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였을 것이다.




일장기를 걸고 일본천황을 찬양하는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의 김기수작곡의 황화만년지곡(皇化萬年之曲)연주(1940. 11. 9 부민관, 일본기원 2600년을 기념하는 봉축연)


이제 세월이 흘러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생겨난 문화를 일제문화니 한국의 전통이니 따지냐고 할수도 있겠으나 모르고 추종하는 것과 알고 행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라 진솔하게 지적하는 것이다.

필자는 필자의 주장이 잘몰라서, 잘못된 주장이길 바라며,

악기 제작자나 가야금 산조 전수자들 누구든 국악계 종사자들의 또 다른 이견(異見)이 있길 기대하며, 산조가야금, 산조음악이 필자의 주장보다 더 훨씬 오래된 한반도 전통문화라는 사실을 증거를 제시해 밝혀주길 바란다.

또한 지금껏 그래왔고 지금처럼 산조가야금 산조음악이 마치 오래된 전통인양 막연한 심증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억지 학문으로 지속되지 않길 바란다.



친일매국노 주요인물 109명 매국행적과 약력 중 음악부분 김기수

*김기수(金琪洙·光山哲三, 국악 작곡)-1940년 11월 9일 일본기원 2600년을 기념하는 봉축연회에서 이왕직 아악부가 연주한 '황화만년지곡' 작곡. 이 곡은 이능화의 1939년 한문시에 곡을 붙여 일본기원 2600년 기념 공모 당선작, 국내 최초로 오선보로 작곡된 국악 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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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8일 일요일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탄생한 산조 가야금 산조음악 감상법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탄생한 산조 가야금 산조음악 감상법(이해하기)

필자는 가야금 산조 음악을 이해 하는데 많은 부담을 느끼는 젊은이 들과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좀더 가까이 이해 될수 있는, 이해에 도움이 될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사실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글을 쓴다.

가야금산조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선 음악뿐만 아니라 산조가야금과 가야금 산조 탄생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음악을 이해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미 이전에 발표한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산조 가야금 탄생은 일제시대 일본인에 의해 서대문 형무소에서 제소자들에 의해 강제로 제작되어 기생들에게 공급된 것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그시기 전국에 산재한 일본인이 관할 통제하는 전국의 형무소에 지배계급의 일본인이 있었고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기방이 있었다, 또한 기방에는 그들이 제공한 기방문화의 필수품인 산조가야금 또한 있었다.




일제강점기 전국 형무소 배치도(1936)

일제강점기 세계정복에 혈안이된 일본인들은 저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독립을 부르짖는 조선인을 살육과 탄압으로 일관 하였으며 그들이 남긴 흔적들은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 보존, 복원중에 있으며, 탄압의 흔적은 전 국토에서 행하여 졌다.

그중 일부 복원된 고문을 위한 고문 기구들은 정신을 혼미하게 하고 사지를 얼어 붙게 한다.


취조때 사용된 여러종류의 고문기구


한사람이 겨우 누울수 있는 정도의 똥통이 있는 독방과 4면에 쇠꼬챙이가 박힌 4각 박스 고문기구



벽관 고문

옴짝달싹할 수도 없이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하여 앉을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고통을 주엇던 고문도구 벽에 서 있는 관이라 하여 '벽관'이라 이름 붙여졌다.


지하독방

취조 후 옥사로 이동하기 전 감금했던 곳, 곳곳에서 들려오는 고통의 비명소리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고문의 공포로 휩싸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하독방에서도 독립운동가는 만세소리를 멈추지 않았고, 독립의 다짐을 되새겼다(서대문 형무소역사관)




민족의 빛 독립운동가 육성증언


...(여자들은)자궁에다 막대를 넣고 휘젓고..... 남자들은 성기에다 심을 박고 불지르는 거.... ...차라리 죽는 게 나았어 죽여 달라고 아우성을 치지 죽는게 낫거든 아픈것 보다 죽는 게 나아... (애국지사 이병희 증언중)


일제시대 서대문 형무소 독립운동가의 물고문


일제시대 서대문 형무소 독립운동을 한 여성들의 주리틀기 고문


사형장 담벼락과 바깥쪽 통곡의 미루나무 이 미루나무는 1923년 사형장 건립당시 식재되었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애국지사들이 마지막으로 이 나무를 붙잡고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원통함을 눈물로 토해내며 통곡했다고 하여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이름 지어졌다.



한편, 사형장 안쪽에 같은 시기 식재된 미루나무가 있으나, 너무나 억울한 한이 많이 서려 잘 자라지 못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서대문형무소역사관)


사형장과 담벼락 안쪽의 미루나무



고문에 의한 고통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저항없이 목숨을 버렸든 독립운동가들 일제시대 서대문 형무소 사형장과 모퉁이에 서 있는 작은 미루나무 너무나 억울한 한이 많이 서려 잘 자라지 못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서대문 형무소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의 참혹한 고문의 현장이 있었으며 피비린네 나는 고문과 고통의 비명소리가 있었고, 억울한 죽음이 있었다.


이시기(일제강점기) 피해자의 고통은 말로 다 할수 없지만 가해자인 일본인들 또한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이다.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면 그들은 그 스트레스를 무엇으로 풀었겠는가,


일제강점기 지배계층의 일본인 남성들은 무엇으로 스트레스를 해소 하였는가?

위에서 보는바와 같이 조선반도를 점령하고 세계정복을 꿈꾸는 일본인들의 야망은 많은 희생을 필요로하고 그들 스스로도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그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를 무었으로 해소 하였는가,


모든 자연계, 동물의 세계에도 마찬가지 이지만 정복에 따른 수컷들의 일차적 보상은 섹스에 있다.


그들은 섹스로 많은 스트레스를 해소 하였다


일예로 전쟁터에 끌려다니며 희생당한 위안부들이 있으며 지배계층을 상대로한 기생들이 이었고 그 중심에 그들이 고안하고 제공한 기방문화의 대표 산조가야금이 있었다.



조선반도를 강점한 일제시대 일본인들에 의해 고안되어 기생들에게 보급된 산조 가야금을 연주하는 기생


일제시대 기생들은 조선인으로 격은 비애는 남달랐을 것이며, 한편 부를 축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였다,


축척된 자금은 후일 자신들의 명예회복에 일조를 하며, 무형문화재도 되고, 국공립교육기관 설립에 일조를 하기도 한다.



일제시대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산조가야금 변화 과정


좌로부터, 첫번째 일제시대 초기제작된 산조가야금, 두번째 문제점이 개선되어 제작된 산조가야금, 세번째 일제시대 후기에 절단된 절금


좌로 네번째, 우측 첫번째 2011년 현재 가장 많이 보급된 일반적인 형태의 산조가야금, 일제의 흔적이 대부분 제거 되었으나 기본적인 형태는 변함이 없으며, 제작자에 따라 여러가지 문양의 도안을 사용하며, 소뼈, 자개, 금, 옥, 칠보등으로 장식을 하기도 한다.


이 시기 민간에서 가혹 일제의 산조가야금을 모방한 가야금이 나오기도 하였는데 특징이라면 세련됨이 부족 하였고, 일제를 상징하는 문양이나 나전칠기 자개장식의 화려함이 부족 하였으며, 부들 메듭 공(孔)이 24공(孔)이 아닌 이전 현악기 제작모양과 같은 12공(孔)을 사용하는 특징을 가지며, 기생들에게 인기를 얻지 못하고 주류악기에 밀리어 지속적 발전을 하지 못하였다.

일제시대 제작된 산조 가야금은 경성(서울)뿐만 아니라 그들이 설치한 전국형무소에 파견된 일본인 중심의 기방에 산조가야금이 있을수 있기때문에 아직도 파손되어 사라지지 않았다면 발견될수 있는가능성이 있으며 필자가 확인한 광주, 대전, 춘천에서 촬영한 산조가야금을 공개 한다



춘천지역에서 발견된 산조 가야금


대전지역에서 발견된 산조 가야금



광주지역에서 발견된 산조 가야금

일제강점기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드라도 희희낙낙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극소수 친일 매국 권력자나 부호가 아니라며, 기방에 출입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대다수 일본 남성과 친일 매국 권력자들이 기방에서 그들은 무엇을 하였겠는가, 고상하게 한복 차려입고 가야금 산조연주를 30~60분동안 연주하는 것을 집중하여 감상 하였겠는가?


손톱 밑에 쇠꼬챙이를 찔러놓고 들어야 하는 비명소리, 사타구니에 지렛대를 끼워 넣고 주리를 틀며 들어야 하는 비명소리, 죽기가 억울해서 미루나무를 잡고 통곡을 하는 조선인들을 상대하는 조선반도에 주둔하는 일본 남성들의 일상 이였다면 그 스트레스는 아마도 정신병을 갖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이들이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 했는지 짐작이 어렵지 않다.


하루 종일 지옥같은 비명소리에서 벗어나 조선의 여인을 품에 끌어안고 조선의 여인이 들려주는 가야금 소리라면 그 소리가 생수같은 깊은 산속 천연약수 같은 소리가 아니였겠는가


그들이 느낀 쾌락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오죽하면 줄줄이 복상사(腹上死)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가,


일제시대 복상사(腹上死)관련기사 바로보기: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1953#


이글의 제목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글은 가야금산조 이해 하는 법(감상법)이다,


과거로 돌아가 똑같은 환경을 재현하여 당시의 일본인이 되어 가야금 산조를 듣는 다면 생수같은 깊은 산속 천연약수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나,


그것을 재현 하기란 불가능 한 것이라 비명 소리라도 듣고 가야금 산조를 감상 한다면 조금 이나마 이해 하기가 쉽지 않을까 한다.


TV 드라마 혹은 영화나 음악중 죽을 듯한 비명 소리를 10분 이상 들을수 있다면 듣고 난후 가야금 산조 음악을 듣기를 추천한다.


천상의 소리, 생수 같은 깊은 산속 천연약수 같은 소리를 느낄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화 예술을 이해 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경우 시대적 배경을 이해 함으로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어 산조가야금과 가야금산조 음악의 탄생배경을 살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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