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10일 일요일

산조가야금, 천익창의 일제시대 가야금(문화)이야기 -연화-

산조가야금, 천익창의 일제시기 가야금(문화)이야기 -연화-


연 화


-머리말-

이미 한반도에는 백만년 전부터 뼈를 불어 소리를 낸 문명의 흔적이 있고(사슴뼈피리 복원 발표, 2010. 8), 한반도 현악기연구는 6~7천년전 비봉리 현악기까지 필자(천익창)에 의해 이미 연구, 발표 되었습니다.

한반도 현악기는 신석기 이후 현재까지 끊임없이 진화 발전하여 왔고, 또한 문화란 시대 환경을 반영하는 것이라 어느 시대 문화든 역사이기 때문에 하나도 소홀이 다루어서도, 지나치게 과장되게 다루어 져서도 아니 된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므로 사실에 근거해 진실된 평가를 하여야 미래 진보적 문화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 합니다.

이번에 발표하게 된 “연화”는 일제시대(1910~1945) 36년 동안 한반도에서 일어난 문화적 사항을 가야금이라는 실물자료와 가상 인물을 통해 조선인이 받은 스트레스를 이야기로 엮어 보았습니다.

때때로 격한 표현이 불편하게 할 수 있으니 양해 하시기 바랍니다. - 천익창 -



연 화


* 천익창소장 일제시기 제작된 기방(妓房)가야금을 근거로 한 천익창의 산조가야금 이야기

1911년 어느 화창한 봄날 연화는 바쁜 걸음으로 제 키만한 가야금을 들고 가는 모습이 힘겨운듯 보이지만 가쁜한 모습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은 듯하다.

오늘은 한일 합방후 고위층으로 부터 처음 불려가는 날로 어떤 인물과 주거니 받거니 하게 될지 내심 궁금하지만 그동안 이 나라 최고의 인물들과 풍류를 함께 해 온지라 남정네 들의 본성이란 뻔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조금은 특별한 날이 되었으면 하는 막연한 기대도 해 본다.

연화는 대궐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처마 끝이 날렵한 한옥에 도착하니 들릴 듯, 알듯 모를 듯한 음성이 뒤섞여 호기심을 자극 한다 아마도 조선인(朝鮮人)과 일인(日本人)이 함께 한 듯하다.

조금 떨어진 방에서 잠시 대기하며 악기의 줄을 고른다.
조금 지나 안내자가 방으로 들라 이른다

연화는 그동안 확 트인 정원의 정자나 이른 봄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바닥에 돗자리를 깔거나 신명나게 배위에서 노젓는 물결 소리와 산천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을 즐겼지만 오늘은 상대할 인물들이 특별나 분위기가 야릇하다

그래도 당대 최고의 악사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지라 어떤 환경에서도 귀품이 몸에 밴 연화는 우아하게 열어주는 문을 통해 방으로 들어선다 순간 탁 하며 악기가 문짝에 부딪히는 소리가 우아한 자태를 순식간에 무너 뜨린다

염병할.....
왼손으로 치마 끝이 밟히지 않게 살짝 들어 올리고 고개를 살포시 숙이니, 오른손이 힘을 받아 악기가 생각보다 들려진 듯하다.

연화는 굳이 자신의 처지에 맞지 않은 곳에 불려와 망신을 당하는 것이라 스스로 위로하며 구태여 태연한 척 한다



김창조(1856~1919)가야금, 조선시대(朝鮮時代)풍류 가야금 (참고: 정악가야금의 길이 약158Cm)


이미 연화가 들어 오기전 주거니 받거니 몇 잔의 술들을 들이킨 조선인(朝鮮人)과 일인(日本人)은 동자가 반쯤 풀려진 몽롱한 자세로 방문이 열리는 순간 시선은 우아한 자태의 연화에게 쏠렸다.

화사한 자태에 입이 벌어지는 순간 탁하는 문짝 발로 차는 소리가 들리니 앉았든 자들 벌떡일어 설번 하였다.

순간 술이 깬 눈으로 멍하니 쳐다보니 연화의 표정은 태연한척 하였으나 얼굴은 순식간에 파랗게 질려 핏기를 잃어가고 자세는 흐트러져 들려진 악기는 속이 뻥하니 뚫려저 텅빈 궤짝처럼 횅하다.

그래도 이 시대 최고의 인물 들이라 이런 순간에도 경솔하지 않다
잠시 당혹하고 놀라움을 진정하고 조선최고의 예인의 가야금 소리를 요청해 숙달된 모습으로 지그시 눈을 감고 소리에 몰입한다.

띵 똥 뚱 땅 찡... 소리는 무게 있고 근엄하며 장중하고 차분하다.

소리가 끝나고 연화가 물러나니 조선인(朝鮮人)과 일인(日本人)은 각기 다른 소리로 평을 한다.

최고위 조선인은 이미 일상적으로 들어온 소리라 초장의 실수만 아니 였드라면 하는 아쉬움을 표하며 악사의 실수를 사과 한다.

하나 일본인(日本人)은 여유로운 표정과는 달리 대조적으로 갖가지 궁금증을 표현 한다

` 조선의 악기는 여인이 질질 끌고 다닐 정도로 힘들고 큰 것이 아닌가?

` 악기가 궤짝처럼 생겨 일본도(日本刀) 수십 개가 들어가지 않겠는가?

` 만약에 다음번에도 저 악기를 들고 들어온다면 속에 무엇을 숨겨올지 검열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 대 일본제국이 세계를 해방해야 하는 시기에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풍류를 할 수 있겠는가?

` 음악도 그렇다 시국이 어느 때인데 저렇듯 여유 있고 한가한 음률만 즐기겠는가?.... 등



조선시대 풍류 가야금과 일본도(日本刀)



일본도(日本刀)



풍류 가야금 뒷면, 악기 속에 일본도(日本刀) 여러개 들어갈 수 있음.


조선인은 그동안 듣도 보도 못한 황당한 지적에 놀라며 머리끝을 곤두세우나 일인의 예리한 지적은 끝없이 쏟아 놓을 작정이다.

,,,악기가 어둡고 튀튀 하여 미소 짖는 달빛아래 대 일본제국의 남과 조선의 여인이 쌍쌍이 즐겁고 기뻐야 할 분위기를 상하게 하고, 술맛을 떨어뜨리니 이 화창한 봄날의 사쿠라 향기와 대조를 이룬다 등....


조선인은 일인의 거침없는 표현에 몸 둘 바를 모르며 눈과 귀를 곤두세워 새겨듣고, 속으로 되 세기며 명석한 두뇌 속에 기억한다.

조선인은 일인과 헤어진 후 끔찍했던 순간에 일인이 한 말을 낱낱이 기억해 두 번 다시 반복된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아침이 밝자 조선인은 지난밤 술 마신 기억보다 칼날 같은 일인의 한마디 한마디가 뇌리 속에 기억되어 한숨도 제대로 잠을 못 잔 듯하다.

서둘러 궁정의 악기장을 불러 새로운 가야금을 만들 것을 명령 한다.

` 악기가 지금 것과 크지 않고, 여인이 작은 문짝도 부디 치지 않게 작게 만들어야 하고,

` 악기의 뒤 짝과 양쪽으로 터진 구멍을 봉쇄하여 속에 흉기(무기)가 들어갈 수 없게 하여야 하며,

` 포장을 했다 하여도 속을 확인 할 수 있게 하여야 하고,

` 미소 짓는 달빛아래 일본의 남과 조선의 여인이 쌍쌍이 즐겁고 기뻐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며,

` 곧은 절개로 충성을 엿볼 수 있게 하여야 하고,

` 화창한 봄날 사쿠라(벚꽃) 향기가 날수 있게 만들라, 이른다.


장인이 이 말을 듣고 맘에 깊이 새겨 공방에 들려 제자에게 전하며, 밤새워 연구하라 이른다.

몇 날이 지나 장인은 뒤 틀리는 감정을 억제하고, 그의 제자를 불러 연구하였냐고 물어 본다.

제자는 " 악기를 작게 만들면 오동이 물러 열두 줄의 힘을 어떻게 감당 할 수 있게 할까요?.." 하고 제자가 물으니,

장인은 "악기를 작게 만들면 줄의 간격도 좁아질 것이고, 오동이 약하여 몸통이 휘어질 수도 있으니 튼튼한 밤나무나 소나무로 덧판을 붙이면 될 것이 아니냐" 한다

또 제자는 "달이 어떻게 미소 짓게 하며, 일본의 남과 조선의 여인이 어떻게 즐겁고 기쁘게 할까요?..." 하니

장인은 " 너는 아직도 달이 웃는 것을 본 일이 없느냐! 하며, 짜증스레 고함을 지르며, "보름달은 어떻게 하고 있느냐? " 하고 되물으니 제자는 "엉겹결에 보름달은 웃고 있지요" 한다,

장인은 "그러면 미소 짓는 달은 어떻게 하고 있겠느냐? 하니 제자는 "초승달은 미소 짓고 있지요" 한다.

그러면 된 것이 아니냐, 손이 닫는 머리 판에 미소 짓는 초승달을 그려 넣고 일본의 수컷은 일장기를 그려 넣고 조선의 여인은 그려 넣지 않아도 악기와 함께 있을 것이니 그저 남여가 쌍쌍이 기쁘게 쌍희 희(囍) 자를 중앙에 넣으면 될 것이 아니냐" 한다

또 제자는 "뒷면과 양쪽을 봉쇄하면 뱃속에 차는 소리를 어디로 뱉어 오리까?...하고 제자가 물으니, 장인은 점점 인내심을 잃어가며, 뒤틀리고 꼬여지는 감정으로 말의 품위를 잃어 간다.

" 뱃속에 똥도 차면 쏟아낼 구멍이 필요 하지 않느냐! , 남여가 쌍쌍이 기쁠려면 무엇이 필요하겠느냐 들어가고 나가는 구녕이 필요하듯 끌어안고 꽂을 수 있는 높이에 큼직한 여인의 구녕을 뚫고,
위에는 미소 짓는 달을 그리고 아래는 놈들의 일장기를 그려 넣으면 끓어 차는 소리를 뱉을 수 있을 것이다.“ 한다.

“아무튼 흉기가 들어갈 수 있는 오해를 사게 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하며 덧붙이니

제자는 또 “어떻게 곧은 절개로 충성을 엿 볼 수 있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곧은 절개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느냐?” 하고, 장인이 물으니, “곧고 절개라면 대나무지요” 한다, 그러면 “일장기 옆에 대나무를 그려 넣으면 될 것이 아니냐 ” 한다.

` 소리 내는 악기가 사쿠라 향내를 어찌 내겠습니까?.. 제자가 또 물으니,
“꽃잎이 다섯 가닥의 사쿠라가 향이 나면 얼마나 나겠느냐, 제자야 너는 향을 코로만 느끼느냐, 꽃잎을 더 많이 붙여 눈으로 향기를 맡을 수 있게 하라,” 이른다.


장인은 내장이 끓어 차는 뒤틀림을 인내하며 끝까지 답을 한뒤 "내 입이 거칠다고 정성을 게을리 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하면서 거듭
"장인은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손끝으로 말하는 것이니 정성을 게을리 하지 말라" 이른다.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 장인은 정성스레 포장된 악기를 최고위 조선인에게 전하게 된다

날으는 새도 불러 앉힌다는 조선인은 연화를 불러 이르기를,

지난날 네가 연주한 악기가 무척 힘들어 보이 더구나 일인들은 탁 트인 공간이나 정자보다 아담하고 정감 있는 좁은 공간을 더 좋아 하니 악기도 거기에 맞쳐 새것이 필요해 내가 특별히 주문해 새로 만들었다

쓰든 것과는 달라 조금 생소 하겠지만 아주 예쁘고 아담하고 화려해 너와 잘 어울릴듯 하구나
아직은 손에 익숙지 않을 터이니 정성을 다하여 다루다 보면 손에 익게 될 터이니 열심히 다루어 보거라...하니

연화는
"예, 악기가 매우 예쁘고 손안에 쏙 들어올 듯이 생겼습니다,
열심히 다루어 보겠습니다" 한다.



일제시대(日帝時代) 기방(妓房) 가야금(길이 약 143Cm, 넓이 약 20. 5Cm), 일본도(日本刀, 길이 약 1m), 조선시대 풍류가야금(길이 약158Cm, 넓이 약 28Cm)



일제시대(日帝時代) 기방(妓房) 가야금, 오른손이 닫는 머리판 초승달, 쌍희 희(囍), 일본을 상징하는 일장기



기방(妓房) 가야금 뒷면 위로부터 초승달



기방(妓房) 가야금 뒷면 손잡이겸 공명홈



기방(妓房) 가야금 뒷면 아래원형의 홈과 대나무



사쿠라(벚꽃)



기방(妓房) 가야금 옆면 사쿠라(벚꽃)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자개꽃 장식



기방(妓房) 가야금 뒷면 위로부터 초승달, 손잡이겸 공명홈, 아래원형의 홈과 대나무, 일본도(日本刀), 악기 속으로 일본도(日本刀)가 들어갈 수 없음


가야금 가방(1)



가야금 가방(2)



가야금 가방(3)

1, 2, 3, 기방(妓房) 가야금, 가방(케이스)와 일본도(日本刀), 이중 지퍼(자크) 경계선에 칸막이가 있음, 내용물 검열시 윗쪽 지퍼만 열어도 내용물을 확인 할 수 있음.


연화의 화려하고 앙증맞은 새 가야금은 특히 좁은 방과 좁은 문에도 부딪치지 않고 들고 다니기 편리해 어느듯 기방 여인들에 유행이 되어 너 나 없이 비슷하게 주문을 하여 사용하니 어느새 그 인기는 필수가 되었다.

이시기 기방에 출입을 할 수 있는 자라면 일인들이나 그들에 동조하는 소수의 권력을 가진 조선인들이며 일반인 들이야 어찌 기방(妓房) 출입을 상상이나 하였겠는가...

이때부터 백성들의 정서와 동떨어진 별세계의 일제시기 기생(妓生)들은 백성들로 부터 천박, 멸시,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백성들의 정서가 외면한 기방에 어둠이 깔리면

작아진 가야금이 흥이 오를 때 쯤, 장안에 행세한다는 일인(日本人)과 조선(朝鮮人)의 활량들도 취기가 돌고 가야금 소리가 익어 그들의 끈적이는 입과 몸이 흐느적 거리며, 진한 색정(色情)으로 밤이 깊어 간다.

매월아 ... 내 몸이 서서히 힘을 받아 너를 원하니 너의 몸을 내게 맡겨 손끝의 정감을 다음에 올때 가야금 소리로 표현하여 보거라,

내 손끝에 닫는 너의 보드러운 살결이 내 몸을 부풀게 해 너의 끈적하고 빡빡한 깊은 살결을 원하니 이 또한 소리로 표현해 보거라,

조(朝鮮人) 일(日本人) 둘이 뒤섞여 하나된 활량은 이런 와중에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매월의 귓전에 코를 박고 헐떡이는 숨소리에 가는 소리를 섞어 사정없이 헐떡이며 격정의 순간에도 "이순간도 잊지 말고 소리로 표현해 보거라," 하며

긴 숨을 내쉬며 나무토막 엎어지듯 벌렁 뒤집어지며 폭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숨소리도 조용해 진다.

그래도 나라야 어찌됐든 권력을 가진 자 들은 어느 시기나 할 짓은 다하고 욕심도 채우며 살아왔고 백성들 보다 여유로움이 있어 이런 순간에도 활량다운 멋스러운 구석이 있다.

이 시기 기생들이야 일인(日本人)이나 조선(朝鮮人)의 권력자들과 풍류를 즐기는 일외 할일 없고, 백성들의 따가운 눈총을 모르는 바가 아닌지라 여유롭고 한가하게 나돌아 다녀 좋은일 없어, 여유 있는 낮 시간에 몸을 섞은 활량들의 가야금 소리 주문에 열심히 손끝의 기량을 연마한다.

서산에 해 넘어 갈쯤 모여든 활량 들은 주거니 받거니 취기전의 순간에 기녀들은 갈고 닦은 실력들을 유감없이 발휘 한다.

천천히, 천천히 늘어지며 사이사이 감칠맛을 느끼면서 몸이 달아 솟구치는 불기둥을 사정없이 달아 치고 간질거리듯 한순간 폭풍처럼 뱉어내는 시원함에 긴 한숨과 함께 평화로움이 찾아드는 소리를 만들어 나가니 영락없는 남여의 색정(色情)의 소리다.

소리에 감탄한 활량들은 입으로, 입으로 소문을 퍼트리니

1910년 합방 후 3년 뒤 궁궐에서 쫓겨난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 몇 안남은 지난 궁궐 세습악사(世襲樂士)들에게 까지 소문이 퍼져 간다.

당시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는 당국의 지원을 받으며 앞으로 행로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한 때라 기생들의 인기는 달갑지 않고 편하게 볼 처지가 아니었다.

그들중 색(色)끼 넘치는 악사는 기생들의 가야금 소리를 듣고 나서, 그들 패에 전하길,

"기생들의 가야금은 쪽발이 좆같이 생겼고, 소리는 늘어지다 숨 가쁘게 헐떡이니 쪽발이의 좆이 기생 년의 씹구녕을 탐하는 모습이 산만하고 조잡함이 눈에 선했고"." 그 소리를 들은후 밤마다 달빛아래 쪽발이와 기생년의 교잡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고 쌍쌍이 희희 낙낙하니 쪽발이들의 관심은 기생년 들에게 다 있는 듯하다." 했다.

1913년 궁궐에서 나온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는 그나마 1922부터 일본음악학자 다나베의 도움으로 당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처지라 우리는 쪽발이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면 앞으로 우리의 처지는 어찌 될꼬 하며 앞으로 행로에 대한 불안감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듣고 있든 나이 지긋한 악사는 아무렴 수백년 동안 조상으로 부터 물러 받은 우리 정통의 바른음악 정악(正樂)가야금이 있는데 산만하고 조잡한 기생년들의 산조(散調)가야금 소리만 못할까... 방도를 찾아야지 하며, 방안을 찾길 제의 한다.

이렇듯 고심하며 지나길 여러 날 다시모인 지난날 궁중 세습악사들은 기방에서의 은밀한 색정보다 공개적이고 노골적 충성을 보이기를 합의 한다.

원래 궁정의 악사들이란 권력의 비호가 존재의 기반이라 조선 왕조에 비호를 받든 일본천황왕조에 비호를 받든 어느 쪽이든 생존이 우선이라 단호한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하여 1939년 이왕직 아악부(李王職雅樂部)는 공모를 통해 여론의 관심을 받으며 대 일본제국의 충성을 할것을 만인에 선포하기 위해 김기수 작곡의 황화만년지곡(皇化萬年之曲) 일본천황을 찬양하는 음악을 선택해 일장기를 걸고 자랑스럽게 연주하며, 이제껏 보기 드문 창작 음악을 내어놓게 된다.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 황화만년지곡(皇化萬年之曲)연주(1939)


이렇듯 조선에서 일본이 지배권을 가진지 근 30년, 나이가 삼, 사십 먹은 자들과 그 아래 것들은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인지 자신이 일본인인지 별로, 어찌 되었든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때에 가끔씩 반역자, 역적들이 붙잡혀 처형 되었다고도 하고 처형될 것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백성들은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할 시기라 소문에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하다.

한때 장안에 인기 있든 퇴기(退物妓生) 연화는 오늘도 할 일 없이 빈들거리며 찾는 이 없어 모서리 벽에 서 있는 가야금을 내려 무릅에 앉히고 줄을 골라 퉁겨 소리를 내어본다.

지난 수십년전 만들어져 화려하기 비길대 없든 가야금은 잘 나가는 후배 기생년이 하도 탐을내 섭섭잔케 쥐어주는 돈을 받고 건내 주고, 어느 볼장없는 넘이 만든 것인지 손끝의 정성이 외박 할 때 만든 것이라 볼품은 없지만 혼자서 호젓이 소리내기는 화려한 것과 손색이 없어 늦깎에 둔 자식처럼 애지중지 한다.

기생이라는 것이 잘 나갈땐 몸이 둘이라도 부족하지만 늙어 퇴물 되니 찾는 사람도 관심을 두는 사람도 없다보니 이리저리 떠도는 소문이 그나마 무료함을 달래 주기도 한다.

그래도 젊은 시절 가끔씩 반역, 역적들이 붙잡혀 처형이 되었다는 둥 어쪘다는 둥 소문은 들었으나 바쁘기도 하였지만 기생이란 것이 남들처럼 내어놓고 보란 듯이 떳떳이 싸돌아 다닐 수 있는 처지가 아닌지라 직접 본 일없고, 그저 흘러들은 소문에 불과 했다.

오늘도 머슴들이 하는 말이 잡은 역적 놈 들을 사람이 많은 장터에서 처형을 한다고 소문을 들었다고 쑥덕거리는 말을 듣고 마침 지루하고 무료한 시간을 소일삼아 직접보기로 작정을 하고 나들이를 하기로 생각한다.

나이에 어울리게 튀지 않은 모습을 하고 저자 길로 나서니 이제는 누구도 늙은 퇴기(退物妓生)에게 관심을 두지 않아 나들이 하기엔 부담이 없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사람이 모인 곳을 호기심으로 기웃 거리니 방안에 처박혀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것 보다 훨씬 재미나다.

한곳을 지나 넓고 사람이 가득차 시끄러운 곳이 아마도 머슴놈 들이 쑥덕이든 역적들을 잡아 공개처형 하는 장소인 듯 했다.

웅성이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든 연화는 이넘 저넘 잡스런 인간들의 소리가 귓전을 스친다.
시국이 어느 때 인대 독립운동이니 지랄이니 하며 다니다 잡혀온 인간들이라며, 씨름판 구경온 듯한 인간들의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넓은 터 중앙에는 팔뚝만한 나무기둥이 세워있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대들보처럼 가로기둥이 얹어져 있다, 바닥에는 작두도 놓여있어 멀지않은 시간에 곧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스친다.

예상대로 모여든 군중사이로 길이 트이더니 꿩을 잡아 목을 엮듯 줄줄이 밧줄에 꿰여진 초취한 인간들이 정복 차림의 순사(巡査)들에 끌려 나온다.

순간 군중들은 소리는 요란하나 모두들 뭐라 질러 제키니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고 그 와중에 중앙에 순사(巡査)는 더 큰 소리로 뭐라 질러 대나 도무지 알아 들을 수 없다,

그저 들려오는 외마디 소리는 반역이 어쩌구 역적이 어쩌구, .....

그러더니 올가미에 채워진 개잡듯,

의자에 세워 목줄을 씌워 의자를 발로 차니 한마디 소리 없이 버둥대며 죽어가는 모습이 영락없는 개잡는 꼴이다.

연화는 순간 자신이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
머리끝이 곤두서고 사지가 빳빳해지고 간신히 군중들 사이에 끼여 입은 허 벌려지고 반정신이 나가 오금을 뛸 수가 없다,
그저 그 자리에 박힌 듯 군중 사이에 꽂혀 있다.

고정되어 정신 나간 모습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군중들 시선 앞에 정장한 순사들은 순서대로 다음 처형자를 끌고 나왔다.

이놈은 "대한독립만세! ", " 대한독립만세!" 한다,

분위기가 정지 된 듯해서 인지 이놈의 기진맥진하여 죽을 듯이 내뱉는 소리는 분명히 들렸다.

순간 끌고 나온 순사는 구두 발로 냅다 정강이를 찬 후, 작두 앞에 엎어지게 하여 목을 작두 사이에 끼워 내리 밟으니 순식간에 머리통이 댕강 떨어진다,

몸뚱이는 목 달아난 달구 새끼처럼 사방에 피를 튀기며 버둥 된다.

모여든 군중들은 어느 순간 얼어붙은 입이 되었는지 천지가 쥐죽은 듯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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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 입은 순사들이 떨어진 머리채를 주서 들고 바삐 움직일 쯤,

모여든 군중들은 목 붙은 시체가 되어 유령처럼 흐느적 그리며 뿔뿔이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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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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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늙은 퇴기(退物妓生) 연화는 어떻게 집으로 돌아 왔는지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동안 자신이 보고 살아온 세상은 반쪽 한쪽 눈이 없는 반쪽만 보고 온 외눈박이라 오늘 그 반쪽을 보고난 충격에 넋이 나갔다.

몇일이 지났는지 연화는 먹는 둥 마는 둥 살아있는 것인지 죽어있는 것인지, 천정이 빙빙 돌고, 사방이 노랗고, 허공에 뜬것 같기도 하고, 천길 낭떨어지로 떨어지는 것도 같다.

멋모르고 나들이 다녀온 후 받은 충격 때문인지 눈앞에는 튀어 나올듯한 눈으로 밧줄에 목이 달려 대롱거리는 시체가 이리와~ 이리와~ 손짓하는 듯하고,

외마디 소리치고 떨어져 피 흘리며 굴러가는 대가리...
버둥대는 몸뚱아리가 쏟아 내는 붉은 피는 등잔 빛이 되어 방안을 붉게 칠한다.

순간 등골이 오싹한 한기를 느끼며 두려워 사방을 살피니, 그저 내몸같이 함께 해온 가야금이 벽에 서 있어 벌덕 일어나 님의 품에 안기듯 끌어안고 어지러워 자빠지니

벌거벗은 남정네가 어느 순간 누워있다,

이제 살았다 싶어 한숨 쉬며, 가슴을 쓸어내리니, 남정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동안 얼마나 그리워 했던가, 밤마다 얼마나 외로워 했던가...
젊은 시절 수컷들은 셀 수 없이 사타구니 속으로 손을 집어 넣었었다,
답례라도 하듯 연화의 손은 정신없이 부드럽고 빳빳한 남근을 찾아 아랫도리를 파고든다.

순간 이게 뭐야?...
손이 쑥 들어가 ???........

이개 뭐야 남정네가 아니잖아.....
떡 벌어진 사타구니가 푹파인 것이 웃고 있는 외눈박이 자신이 아닌가....

벌거벗고 벌러덩 누워 골빈년 처럼 일본놈 조선놈 할 것 없이 권력 있고 돈 있는 놈이라면 아무에게나 두 다리 쩍 벌리고, 거품 물고 씩씩대는 숫돼지의 색정을 발정난 암캐처럼 받아 들였었다.

개처럼, 개처럼, 개 같은 년!

어디 이년!

너의 목은 밧줄에도 무사하고, 작두에도 무사한지 저 쩍 벌어지고 뻥뚫린 씹구녕이 시궁창이 됀 자신을 보는 연화는 스스로 미움과 증오가 발동하여 사지가 떨리고 손에 잡귀가 붙은듯 허공을 향해 뭔가 잡을 듯 흔들리는 저 손에 귀신이 붙은게 분명하다.

순간 연화는 벌떡 일어나 어둠속에서도 보이는 듯 귀신처럼 헛간으로 기어 들어가 번개 같이 톱을 찾아 들고 방으로 들어가 떡 벌어진 사타구니를 단숨에 절단 내니

작두에 동강난 대갈처럼 연화의 가야금은 두 쪽으로 동강나 뒹군다.



뒤집어 누운 기방가야금


두쪽으로 동강난 가야금


연화는 순사가 떨어진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가듯, 퍼렇게 늘어져 산발이 된 악기의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나와 몽유병 환자처럼 부엌으로 들어가 아궁이에 집어넣고 귀신처럼 돌아와 넋을 잃는다.

다음날 아침 그래도 한때 이름난 기생이라 번듯한 기와집에 머슴까지 두고 죽을 때 까지 아니 죽은 후에도 재산을 어떻게 할까 염려해야할 재력이라 가야금 하나 아작 난들 누구하나 걱정 할 사람 없다.

" 마님 아궁이에 무엇이 있네요, 이것이 뭔가요?...

".................." 답이 없다

머슴은 궁금하여 부지갱이로 끌어내어 보니 토막난 가야금이다.

" 마님 이것을 어떻게 할까요?.....

" .................." 또 대답이 없다.

그렇잖아도 늙은 퇴기가 미쳤다는 둥, 망령이 났다는 둥, 집안 분위기가 뒤숭숭 한터에 두쪽난 가야금을 보니 그저 가야금이 불쌍히 여겨진다.

또 일, 내었구나,

생각 하면서 일전에 어린 기생이 가야금이 필요하다고 하는 소릴 듣고 내심 기회 보아 하나 마련해 줄려고 생각 하든 터라 끄집어 놓고 자세히 살펴보니 단숨에 잘라진 몸통이라 붙이면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지난번 문짝을 수리하며 남은 경첩을 가져와 뒤판에 붙여보니 감쪽같다,

사람의 머리통은 떨어지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가야금은 두쪽나도 붙으면 소리가 난다.

머슴은 어짜피 박살나 버려진 물건이니 마님은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고, 잘 다듬어 어린 기생이 받아서 쓸 수 있다면 다행이다 싶어 잘 갈무리 한다.

얼마가 지나 머슴은 어린기생에게

"가야금이 쓸 수 있더냐?" 고 물으니, 헤죽 그리며 하는 말이

"경첩이 붙어 있으니 접었다 폈다 할 수 있어 들고 다니기도 편하고, 특히 검열을 받을 필요가 없어 너무 편하다" 는 둥 어린 기생은 좋아 죽는다,

이게 무슨 대단한 발명이라고 가지고 다니며 불편했든 기생들은 잘라서 접고 다녀보니 검열을 받지 않아 좋다고 그저 입에 침이 마른다.

소문이 이러니 개중엔 소문 없이 토막내 들고 다니는 기생이 있는가 하면, 멀리 부산에 어떤 권번 샌님도 토막내 가지고 다닌다는 소문이 떠돈다.

토막난 가야금이 좋아?

들고 다니기 좋아서?

검열을 받지 않아서?

어찌 토막난 가야금만 좋을까.....
토막이나 절절히 피눈물 나게 좋을 일이 야밤중에 밀물처럼 다가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절금(折琴) 두쪽난 가야금 뒷면에 경첩을 붙여 악기를 접을 수 있음



천익창소장 절금(折琴)



정악가야금 일본도(日本刀) 산조가야금 절금(折琴)


이렇게 세월이 흐르든 어느날 언제부터 애국자가 그리 많았든지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며 군중들이 대로에 무리를 지워 외치고, 망했다는 일본은 보따리 싸 제자리로 돌아가고,

반세기가 훌쩍 넘도록 토막난 가야금 처럼 허리가 동강난 땅덩어리에 잊혀지는 것이 아쉬워 때때로 개처럼 물고 뜯고, 여우처럼 간교한 미소를 교환하며,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백성들은 희망을 버린지가 오래다.

이제 세월은 흘러 강산이 손가락 수만큼 바뀌고 과거는 사라지고 기억은 흩어져
2~3십분 이면 충분한 색기 넘치든 가야금 소리도 서양의 소나타형식이 어쩌구...

무형문화재가 될려면 예술적 형식이 어쩌구... 교수가 될려면 무형문화재가 되어야 한다는 둥 하면서,

늘기고 또 늘겨 색정을 느끼기도 전에 무식한 백성들을 지치게 만드니 예나 지금이나 백성의 정서와 너무나 거리가 멀다

또한 아버지의 아버지가 일인의 비위를 맞추었고 그 자식의 자식이 아비가 즐겨했던 산만하고 조잡스러운 가야금 산조를 효심이 가득한 효행으로 보물 취급하는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니

너나없이 갖가지 악기들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받기 위해 1백년의 세월을 소급하여 스승의 스승을 찾아 이잡듯 설쳐 되니 예전에 악기를 좀 만졌든 영혼들은 느닷없이 산조음악의 시조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

시조에겐 구체적 증거물이 필요 하지 않다, 그 제자의 제자가 무형문화재 지정으로 목적은 달성되기 때문이다.

또한 나날이 늘어나는 대학국악에 무형문화재 교수들과 그 제자들이 포진하니 창의적이고 진보적 꿈나무들은 망울이 피기도전에 꿈을 접든지 좌절하여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한반도 현악기 역사는 신석기 이후 현재까지 끊임없이 진화, 발전하여 왔고, 또한 문화란 시대환경을 반영하는 것이라 어느 시대문화든 역사이기 때문에 하나도 소홀이 다루어서도, 지나치게 과장되게 다루어 져서도 아니 되며,

특정시기 특정문화가 부당한 힘으로 필요 이상의 과대 포장되어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면 대단히 위험한 일로 미래 창의적 문화 발전에 큰 장애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에 근거해 진실된 과거를 되돌아 보고, 공정한 평가를 하여야 미래 진보적 문화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 한다.

문화의 발전과 창조는 동기가 바탕이 되며,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문화는 흐르는 물과 같아서 억지로 모아 가두어 두면, 썩어 악취 나는 오물에 불과 할 것이다.



김죽파(김난초 1911~1989.9.10)가야금, 1989년 김죽파 사망전 고흥곤(1951~ ) 악기제작



* 위 글은 천익창소장 일제시기(1910~1945) 제작된 산조가야금를 근거로 한 천익창의 산조가야금 이야기




■ 천익창 경력및 활동

http://iboard2.superboard.com/board.cgi?db=28_dwhyc53noti251&idx=8&page=8




유튜브에 개설된 천익창의 동영상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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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hyc53?gl=KR&hl=ko#g/u




천익창( Ikchang Cheon) 010-8790-7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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